장맛비 내린 날 국사봉에서 만난 뱀허물쌍살벌
오랜만에 국사봉에 올랐다.
공동 현관을 나설 때 비가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더니 국사봉 초입에 다다르니 제법 옷을 적실만큼 비가 내렸다. 발길을 다시 돌릴까 생각을 해 봤지만 오랜만에 큰맘 먹고 집을 나섰는데 그대로 돌아가긴 아쉬워 등산로에 발을 맡겼다. 다행히도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서니 떨어지는 빗방울은 많지 않았다. 궂은 날씨 탓에 평소보다 산을 찾는 이들이 많이 없어 빗소리, 새소리 들으며 사색하기 딱 좋았다.
중간쯤 올랐을까 본격적인 언덕길이 시작되는 부분 울타리쯤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여 살펴보니 벌 두 마리가 집을 짓고 있었다(나중에 도감을 찾아보니 오늘 만난 벌은 뱀허물 쌍살벌로 추정된다). 집의 위치를 잡고 이제 막 집의 기초를 다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만큼 작은 벌, 그리고 아직은 그 벌만큼이나 작은 집. 국사봉을 오르면서 다 지어 둔 벌집은 한두 번 본 적 있지만, 막 집을 짓기 시작한 따끈따끈한 공사 현장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벌집이 무사히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이라 위험한(?) 벌집을 가만히 둘 것 같지는 않고. 오늘 고생한 보람도 없이 벌들은 집 없이 또 새로운 집 자리를 찾아 떠나게 되지 않을지.
벌은 집을 지어두면 사람들이 기를 쓰고 없애려고 해서 문제, 사람들은 집이 비싸서 문제다. 어찌 보면 동병상련이다. 포근하고 안락한 보금자리.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고, 직장에서 소모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곳. 집은 그런 곳인데, 사고파는 재화가 된 집은 삶의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자 부담을 주는 공간이다. 요즘은 30년 이상 장기 대출도 있다는데, 직장 생활하는 내내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다 보면 은퇴할 때 훈장 같은 집 한 채가 달랑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나마 정년퇴직 전에 온전히 내 집으로 만들면 다행일 테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정상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뚝딱뚝딱 쉬는 날임에도 공사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공사 중이라고 등산로 하나가 임시 폐쇄되었던데, 그쪽에서 방면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았다. 정상에 올라 바라보니 크레인들 옆으로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건물들이 많이 올라온다. 벌집은 눈에 보이는 족족 사라지는데, 한 번 지으면 잘 없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집은 동네에 차고 넘치는데 또 새로운 집들이 생겨난다.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