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20. 제주 여행기(1)
바뀐 잠자리가 낯설었는지, 아니면 차로 5시간 반, 배로 5시간 걸렸던 긴 여정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인지 새벽에 깨서 한바탕 울음 잔치를 벌였던 해솔이는 제주의 아침 해가 바다 위로 솟아오르기 전부터 잠에서 깨어 엄마 아빠를 찾았다. 아내도, 나도 지쳐있었기에 평소와 같은 아이의 빠른 기상에도 피로도는 몇 배 더 큰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밤 제주에서의 첫 밤을 축하하기 위한 엄마 아빠의 안주였던 전복, 아이의 아침 메뉴는 전복 볶음밥이었다. 우리 부부는 소소하게 계란밥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민박 주인아주머니께서 아침에 주신 오징어 덕분에 예정에 없던 풍성한 밥상에 둘러앉아 푸짐한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아이도 싱싱한 오징어의 식감이 좋았는지 엄마가 만들어 주신 전복 볶음밥을 다 비우고도 오징어를 맛있게 먹었다.
아침부터 생각해 둔 일정은 있었지만, 전날의 피로 덕분인지 어영부영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던 우리. 평소에는 꿈도 못 꾸던, 스스로 누워 잠을 청하는 아이의 모습을 신호 삼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낮잠 삼매경에 빠져들었다(나중에 잠에서 깨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아이는 두 시간 반 정도, 나도 두 시간 넘게 잠에 푹 빠져들었단다. 정작 아내는 10분 정도 자고 낮잠 삼매경에 빠진 부녀를 신기해하며 영겁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긴 낮잠으로 피로를 싹 씻어낸 후, 아내의 제안에 따라 김녕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찾았던 김녕 해수욕장, 어딘가 많이 낯이 익다 했더니 아내와 연애시절 여행을 왔을 때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었다(아내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기에 더욱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는 그곳).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골라 그늘막 텐트를 치고 아이, 아내와 함께 신나게 해수욕을 즐겼다. 아이는 처음으로 물놀이 다운 물놀이를 해서, 우리 부부도 물놀이와 함께 맛있는 회덮밥,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추억도 되살려보고, 아이와 신나는 추억을 하나 더 쌓을 수 있어 좋았다.
숙소에 도착해 간단하게 정비를 한 후, 저녁까지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돌하르방 미술관을 찾았다. 큰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지만 제주의 특색을 잘 담은 돌하르방과, 곶자왈과 더불어 다양한 소품들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는 미술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도 온몸이 땀으로 젖어 피곤해 보이면서도 내내 즐거운 표정으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어제 아내가 장 봐 둔 흑돼지 오겹살과 함께 푸짐한 만찬을 즐겼다. 제주에 올 때마다 빼먹지 않고 맛보는 한라산 소주, 그리고 시원한 에일 맥주와 곁들여 먹는 흑돼지의 맛은 일품이었다. 아이는 흑돼지보다는 숙소의 마당에 있는 식물들, 숙소 한편에 꾸며져 있는 연못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는지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며 엄마 아빠의 혼을 쏙 빼놓았다.
출발하기 전만 해도 자정부터 시작하는 장거리 운전과 긴 시간 배를 탄다는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첫 장거리 여행이라는 점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이번 여행. 이제 두 번째 날이지만 벌써부터 즐거워하는 아이와 아내의, 그리고 나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훌쩍 떠나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웠던 오늘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이가 깊은 잠을 자고, 내일도 즐거운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