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21. 제주 여행기(2)
제주에서의 셋째 날.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난 해솔이 덕분에 일찍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 먹고 김녕 미로공원 개장 시간에 맞춰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몰려오는 피로 탓에 일정이 조금 늦어지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해솔이가 차에 타기가 무섭게 꿈나라 여행을 떠난 터라 잠을 좀 더 재울 요량으로 예정에도 없던 성산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광치기 해변에 있는 한산한 카페를 전세라도 낸 것 마냥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멀리 보이는 성산 일출봉과 해변에 와 부서지는 파도를 구경하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 이왕에 멀리 내려온 김에 이번 여행 중 언젠가는 방문하려고 생각했던 아쿠아플라넷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지난번 광교 아쿠아플라넷을 찾았을 때 아이가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오늘도 큰 기대를 안고 아쿠아플라넷 제주로 향했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요즘 관광객들이 제주로 몰렸다는 뉴스를 보고 난 후 생각보다 제주에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좋다고 요 며칠 동안 생각했었는데 안 보이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었는지 싶을 정도로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비싼 입장료가 부담스럽긴 했는데 운 좋게 이번 달이 생일이었던 덕분에 큰 폭의 할인을 받고 입장할 수 있었다. 아내는 지금까지 함께 지내면서 내 생일이 7월이라 좋았던 적이 처음이란 이야기를 했다.
입구에 있는 작은 수조, 아직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입구부터 놀라움과 즐거움의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조 속에서 헤엄치는 많은 물고기들을 보면서 마치 대화를 하듯 해석하지 못할 말을 하기도 하고, 우아하게 헤엄치는 상어들을 보며 '우와'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관람 초반 많은 사람들이 아레나 공연을 관람하러 간 덕분에 비교적 한산한 수족관을 둘러볼 수 있었지만, 공연이 끝나고 갑자기 몰려든 인파에 제대로 된 구경은 꿈도 꾸지 못하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둘러 구경을 마쳤다. 아이에게 물개 공연도 보여주고, 돌고래 공연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빠의 욕심이었을 뿐, 아직 19개월의 어린아이의 컨디션과 무시무시한 코로나19의 압박은 넘을 수 없는 장벽 같았다. 다음에 다시 찾게 되면 아이와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머물며 다양한 볼거리들도 둘러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겠노라 생각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오후 3시, 애매한 시간 숙소로 들어가기엔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한 군데 더 들렀다 갈 요량으로 내비게이션에 '비자림'을 목적지로 입력했다. 한 10분 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또 수면모드에 돌입한 아이 덕분에 엄마와 아빠의 눈치게임이 시작되었다. 이대로 비자림으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숙소로 갈 것인가. 비자림 쪽으로 일단 가 보다가 상황을 보고 여의치 않으면 숙소로 향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비자림 쪽으로 일단 향했는데, 아이가 도통 잠에서 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비자림은 다음에 방문하기로 하고 숙소가 있는 김녕으로 행선지를 옮겼다. 성산으로 내려갈 때는 해안 쪽 도로를 따라 내려갔었는데, 김녕으로 가는 길은 좌우로 초원과 오름들이 듬성듬성 솟아있는 전형적인 제주도의 내륙 도로, 비록 목표하던 바는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한적한 도로에서 오랜만에 우리 부부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달렸던 한낮의 드라이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해 한잠 늘어지게 잔 후, 아내, 아이와 함께 김녕 해안가에 있는 '청굴물'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청굴물은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이다. 여행을 오기 전날 탈이 난 허리 때문에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거나, 늘 아내가 아기 띠를 하고 다녔던 이번 여행, 다행히도 탈이 났던 허리 상태가 좀 나아져 오랜만에 내가 아기 띠를 하고 고요한 시골 동네의 돌담 사잇길을 함께 걸었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아니면 아직 허리가 온전하지 않은 탓인지 아기 띠의 무게감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아내가 많은 고생을 했을 생각, 평소처럼 아이와 긴 시간 동안 몸으로 놀아주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감정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닌 가족을 위한 몸, 좀 더 건강관리에 힘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리고 집으로 들어와 제주도 향이 물씬 풍기는 고사리 육개장과 곁들여 먹는 우도 땅콩 막걸리는 꿀맛이었다. 그리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고요한 동네를 가족과 함께 걸으며 바라본 석양도 아름다웠다. 우리 가족의 제주여행 셋째 날을 이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