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Dec 24. 2021

Happy Birthday

코로나19 베이비 딸내미의 두 돌

  일 년 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생일날이 되면 나는 현관에 앉아 아빠의 퇴근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오랜 기다림 끝에 계단에 또각거리는 아빠의 구두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열리는 그 순간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생일날 저녁이 되면 늘 우리 가족은 시내에 있는 한 경양식 레스토랑을 찾았다. 아빠, 엄마는 경양식보다 다른 메뉴를 원하시는 눈치였지만 나는 늘 그곳을 고집했다. 바야흐로 다양한 음식의 전성시대인 요즘이야 경양식 말고도 눈길을 끌고 군침을 흐르게 하는 메뉴들이 도처에 널려 있지만, 어렸을 적 내 눈높이에서 경양식은 그야말로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만찬이었던 것 같다. 


  오붓한 저녁 만찬을 마치고 나면 삼척 우체국 거리에 있는 스포츠 매장에 들러 새 신발을 골랐다. 아빠는 생일이면 늘 운동화 한 켤레를 사 주셨다. 운동화를 한 번 사면 밑창이 닳아 처음 모양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조금만 더 신으면 구멍으로 발가락이 비집고 나올 것처럼 낡고 헤질 때까지 신었던 그때엔 운동화를 새로 살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용도별로 몇 켤레씩이나 신발장에 자리를 잡고, 운이 없으면 일 년에 몇 번 바깥공기를 쐬지 못하는 신발도 있는 지금,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소중한 기회를 맞아 운동화를 고르면서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가 지어진다. 나에게 생일날은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12월 23일, 사랑하는 딸 해솔이의 3살 생일을 맞았다. 3살이라고는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일주일 뒤 해가 바뀌었으므로 사실상 두 번째 생일이다.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간식을 달라며, 동화책을 읽어달라며 아빠에게 매달리는 아이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아이의 두 돌 생일을 맞아 무언가 특별한 추억거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상이 회복되는가 싶더니 다시 확산세를 보이는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몰려온 한파와 미세먼지는 우리 가족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아이가 아직 생일의 개념을 잘 모르는 덕분에 생일날 하루도 그저 보통의 하루와 다름없는 날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천진난만한 표정인데 아빠와 엄마의 얼굴에만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해솔이가 처음 세상에 나오던 날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처럼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출산일이 가까워질 무렵까지 아내는 해솔이가 세상 빛을 수월하게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부러 걷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엄마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솔이는 엄마에게 오랜 산통을 안겨주고는 결국 수술실에서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아이가 세상 빛을 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해솔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하늘에서 내리던 눈은 그런 고통을 감내하고 세상에 나온 아이와, 아내를 축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생일의 주인공은 단연 아이이지만, 숨은 또 다른 주인공은 아내이지 않나 싶다. 아이의 생일을 맞아 어떤 선물을 사 줄까, 어떻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줄까 고민하면서 아내에 대한 감사함은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글을 빌려서라도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유년시절 생일날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셨던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올해 생일은 보통의 일상과 다름없이 지나갔지만, 앞으로의 아이 생일은 아이의 탄생을 축하함과 동시에 우리가 가족이 될 수 있었던 모든 일에 감사하며 소중한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하루빨리 코로나 시국이 안정되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다시 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다슬기와 거머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