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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28. 2021

대화가 필요해

아빠와 딸의 줄다리기

  옹알이를 하던 해솔이가 처음으로 말 다운 말을 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을 시작하는가 싶던 딸내미는 어느덧 하루 종일 아빠 엄마를 흉내 내는 말, 아빠 엄마와 함께 본 그림책 속에 나왔던 말, 오고 가는 차 안이나 거실에서 들었던 동요에서 나왔던 말, 어린이집에서 오빠, 동생들에게 들은 말, 그리고 아빠 엄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의미를 담은 말 등 세상의 온갖 말들을 쏟아내며 아빠 엄마를 쉴 새 없이 만드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늘 우리 아이의 목소리는 어떨지, 아이와 함께 어떤 대화를 나눌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아이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꿈꿨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와 함께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면서, 둘이서 마주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장난감 놀이를 하면서 늘 대화를 나누는 사이좋은 부녀의 모습은 상상하기만 해도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아이와 하는 대화는 늘 내가 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아름다운 모습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자기만의 취향과 의견이 생기고, 다양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서 아빠와의 피할 수 없는 의견, 감정의 충돌이 생기는 탓일 것이다.


  아이와의 의견 충돌, 감정싸움이 편할 리가 없다. 부족한 솜씨지만 정성을 가득 담아 차린 아빠표 점심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도 거의 대지 않은 채 간식을 대령하라는 아이, 재미있게 놀아주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정보를 찾아 놀아주려고 하면 무심하게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 가뜩이나 부족한 밤잠을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좀 자 줬으면 하는데 누가 봐도 졸린 눈을 하고서 순순히 잠들지 않겠다고 농성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내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아이가 내뱉는, 순전히 아빠 입장에서의 미운 말들은 가뜩이나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는 롤러코스터에 부스터를 더한다. 


  아이의 눈에도 아빠가 곱게 보일 리 없을 것이다. 맛있는 새우튀김을 더 먹고 싶은데 새우튀김은 쥐꼬리만큼 주고 먹기 싫다고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한 시금치와 버섯을 식판에 가득 담아주는 아빠, 오늘은 조용히 어제 보던 그림책을 음미하고 싶은데 그림책도 못 보게 자꾸만 이상한 놀이를 하자며 아이처럼 떼를 쓰는 아빠, (꿈나라 여행 중이라 알 리가 만무하지만) 본인은 밤잠 자는 시간이 아깝다며 늦은 밤에도 커피를 마시고, 낮잠 잘 시간에는 이것저것 하느라 잠도 안 자놓고 피곤한 티는 다 내면서 내가 놀고 싶다는데 자꾸만 억지로 재우려고 하는 아빠의 모습은 안 그래도 아기 주먹만 한 작은 위장에 큼지막한 군고구마를 계속 떠먹여 주는 것처럼 답답할 것이다. 결국 감정의 불통은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인 나는 나대로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오롯하게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해 주겠다던,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겠다던 육아휴직 초기의 다짐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생각해 보면 아이와의 모든 갈등은, 내 감정의 소용돌이는 아이를 나와 다른 하나의 인격적 존재임을 수없이 망각하는 나에게서 비롯됨을 머리로는 잘 아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제 갓 두 돌이 지난 아이와 매일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는데 하물며 사춘기 시기 아이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과연 나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가 어떤 말을 해도 사랑스럽게 들어주고, 어떤 생각, 의견을 이야기해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겠다던,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 가졌던 생각으로 현재의 생각을 '리셋' 할 수 있는 버튼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다(휴직을 하고 쓰고 있는 일련의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리셋 버튼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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