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Dec 30. 2021

"나도 딸기 먹고 싶네"

따스했던 봄날 마음껏 뛰놀던 딸기 밭이 기억나니?

  아빠 무릎에 앉아 함께 그림책을 보던 해솔이의 시선이 오래도록 한 곳에 머무르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이게 뭐야?"


  "이건 딸기 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야."


  당연히 아이에게는 생소한 허수아비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겠거니 생각하여 허수아비를 알려 주었는데, 아이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나도 딸기 먹고 싶네!"라고 이야기하며 갑자기 책 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아이, 나도 덩달아 고개를 숙여 '요 녀석이 갑자기 무얼 하나' 들여다보았더니 그림책에 나와 있는 딸기에 입을 맞추고 먹는 시늉을 한다. 딸기가 많이 먹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림책에 나온 딸기 밭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잠시 지난봄 어느 날의 추억에 젖었다.


  온 세상을 물들였던 여린 연둣빛이 점점 녹색으로 변해가던 5월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고향을 찾았다. 해솔이가 놀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엄마는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아들과 손녀를 데리고 꼭 갈 곳이 있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지난번 춘천에 오셨을 때 딸기를 좋아하는 해솔이의 모습을 보며 '고 녀석 딸기 정말 좋아하네' 하며 한껏 웃음꽃을 피우셨던 엄마. 엄마는 그날부터 해솔이에게 딸기 밭을 구경시켜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다고 했다.  


  맹방에 위치한 딸기 농장은 우리 가족의 추억이 많이 담겨 있는 곳이다. 대학 시절부터 종종 고향을 찾을 때마다 들러 싱싱한 딸기를 한가득 사곤 했던 곳, 가끔은 염소 먹이로 줄 딸기 섶을 트럭에 한 가득 실으면서 하우스 속 더위와 달달한 향을 내며 삭아가는 딸기 냄새와 씨름하며 온 몸을 땀과 딸기 향으로 물들이던 곳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투덜대긴 했지만, 부모님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아이와 함께 찾았다는 것에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에 넓게 펼쳐진 녹색의 물결, 그 사이로 보이는 붉은 알갱이들을 보며 아이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늘 아빠, 엄마가 냉장고에서만 꺼내 주던 딸기, 카트에 타고 마트를 둘러볼 때 상품 진열대에서 붉은빛을 뽐내며 눈과 손을 유혹하던 딸기가 눈앞에 잔뜩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보며 해솔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길게 펼쳐진 딸기 세상


  해솔이는 길게 뻗어 있는 고랑 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난생처음 보는 딸기밭의 풍경을 마음껏 눈에 담는가 싶더니 어느새 고사리 같은 손과 꼬까옷, 입술을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붉은 딸기를 주먹으로 꼭 쥐었을 때 뭉개지는 느낌이 신기했는지 손으로 딸기를 꼭 쥐어도 보고, 손에 잔뜩 묻은 과즙이 평소에 아빠, 엄마가 접시에 담아주던 그 딸기가 맞는지 연신 입에 넣어 확인해 보는 듯한 모습이 참 귀여웠다. 해솔이가 이곳저곳 다니며 딸기를 만져 폐를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해솔이 만한 손주를 보는 것 같아 예쁘다며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참 감사했다. 덕분에 해솔이는 생전 처음 구경한 딸기 밭에서 원 없이 딸기를 먹었고, 어른들은 한껏 신나 하는 해솔이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 지을 수 있었다. 


눈과 손을 유혹하는 붉은 딸기들



딸기를 꼭 쥐어도 보고



고사리 손과 꼬까옷, 입술을 온통 물들이며 원 없이 먹었다


  마트에 가면 탐스러운 모습에 마음이 가다가도 비싼 가격을 보면 선뜻 장바구니에 담기가 무서운 딸기. 넘실대던 초록의 물결 속에서 딸기를 원 없이 먹으며 행복해하던, 그림책을 읽다 딸기 그림에 머리를 파묻으며 "나도 딸기 먹고 싶네!"라고 이야기하던 해솔이의 모습을 보면서 다음번에 마트에 가면 장바구니에 꼭 딸기를 담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솔아 아빠가 딸기 꼭 사줄게!'         




  



작가의 이전글 대화가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