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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an 04. 2022

석사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아빠, 나가요."


  아침을 알리는 자체 알람 소리, 오랜만에 늦잠 한번 늘어지게 자 보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해가 뜨기 무섭게 고사리 손으로 아빠를 흔들어 깨운다. 


  "해솔아, 어디 가고 싶어?" 


  "오리"


  석사천에 오리 구경을 가자는 얘기, 그러고 보니 아이와 함께 석사천을 따라 함께 걸은지도 꽤 오래되었다.


  몸집에 비해 커서 불편한 유모차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끄는 아빠, 엄마의 손길에 이끌려 찾았던 석사천. 석사천에 가면 오가는 사람들, 자전거, 강아지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이의 관심을 끄는 물고기와 새들도 많았다.


  눈을 감고 해솔이와 함께 걸었던 석사천 길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사람들과 자전거가 오든 가든 신경 쓰지 않고 한가로이 무리 지어 물 위를 떠 다니는 한 떼의 오리들이 보인다. 수풀 속을 뒤적이고 물속을 노려보다가 꽁지만 쏙 빼고 잠수하더니 어떤 녀석은 입에 무언가를 물고, 다른 녀석은 허탕을 쳤는지 빈 입으로 입맛을 다시며 올라온다. 오리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이따금씩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점잖게 걷다가 핀셋으로 물건을 집듯 물고기를 콕 집어 입에 물고 있는 백로의 모습도 떠오른다. 세상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던 해솔이의 얼굴이 가장 생생하게 떠오른다. 


답답한 유모차보다는 걷는 게 더 좋아요


길가에 다람쥐 맘마가 열려 있네?!


꿈틀꿈틀 애벌레야 뭐하니?




  석사천 산책로는 아이의 좋은 놀이터이기도 했다. 둑방길에 있는 주목나무의 빨간 열매를 '다람쥐 꺼'라며 따서 손에 잔뜩 쥐어 보기도 하고, 보송보송한 강아지 풀을 잔뜩 뽑아 '멍멍 풀' 다발을 만들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이의 모습.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꽃에 앉은 나비와 벌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 행여나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전거에 치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따라다니는 아빠를 진땀 빼게 했지만 해맑은 표정으로 온몸으로 세상을 느끼는 아이의 모습이 그처럼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계절마다 형형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석사천과 함께 아이의 몸과 마음도 많이 자랐다. 나에게 있어서도 아이를 쫓아다니며 때로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때로는 나의 눈높이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혼자 조깅을 할 때, 아내와 함께 늦은 밤 산책을 할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석사천의 삼라만상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을 수 있었던 한 해였다. 


아빠, 오리들은 어떻게 물 위에 떠다녀요?


한가로이 아침 수영을 즐기는 오리 가족


해솔아 또 놀러오렴!


  걸음을 걷고 난 후로는 유모차도 잘 안 타려고 한다, 안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이 컸다, 날씨가 너무 춥다, 미세먼지 농도가 너무 나쁘다 등등 갖가지 핑계로 석사천 부녀 데이트를 참 오래도록 미뤄왔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아이가 어린이 집을 가는 일상에 적응되어 잠시 잊고 있었던 석사천의 풍경을 보러 오랜만에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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