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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l 28. 2022

모슬포의 일몰을 바라보며

아내와 단둘이 제주여행 4일 차

  누구에게나 매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있듯 매번 찾을 때마다 정겨운 여행지가 있는 법, 올레 10코스가 나에게는 그런 여행지이다. 처음 올레길을 걸었던 2014년 걸었던 10코스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에 2018년 아내와 함께 찾았을 때도 함께 9코스를 걷고 난 뒤 아내를 숙소가 있는 모슬포행 버스를 태워 보내고 홀로 10코스를 따라 걸어서 숙소로 갔을 정도이니... 그렇게 애정을 갖고 있는 10코스를 오늘은 아내와 함께 걸어 더더욱 뜻깊은 날이었다.

10코스의 시작점 화순 금모래 해변

  화순 금모래 해변에서 출발하여 황망대까지 가는 길. 다녀간 지 오래되어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아니면 그 사이 코스가 조금 조정된 것인지 생각보다 해안이 아닌 산길과 곶자왈을 따라 걷는 길이 길어져 당황스러웠지만 우여곡절 끝에 황우치 해변을 지나 화순항과 황우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황망대에 올랐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황망대에서 땀을 식히며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아내는 벌써부터 지금껏 걸었던 올레길 중 최고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아직 오늘의 하이라이트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했다며 발길을 재촉했다.


황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황우치 해변과 화순항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산방산 아래에 있는 하멜 기념비와 용머리 해안, 사계항을 지나 사계리 해안길에 접어들었다. 사계리 해안길을 얼마쯤 걷다 뒤로 돌아 지금껏 지나온 화순항, 산방산과 드넓게 펼쳐진 해안과 푸른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이 풍경이 내가 제주를 그리워하고, 제주를 찾을 때마다 올레 10코스를 다시 찾게 하는 이유가 아니었던가. 아내도 한참을 넋을 놓고 풍경을 감상하더니 지금까지 걸었던 올레길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을 길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예쁜 풍경을 담아보겠다고 열심히 걸음을 옮겨 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은 많이 건지지 못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사진에 근접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어떤 사진도 눈이 담아내는 그대로의 풍경과 그때의 감동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을 오늘 다시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제주의 풍경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


  송악산 둘레길을 지나 모슬포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모슬포항에서 보말칼국수로 든든한 저녁을 먹고 나왔더니 붉은빛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항구 주변의 건물들에 가려져 온전란 일몰을 보기엔 글렀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아내가 일몰을 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시도는 해 보자는 말을 건넸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저녁,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해를 놓칠세라 항구에서 일몰을 볼 수 있을만한 곳으로 무작정 달렸다. 전망을 가리는 장애물 없이 탁 트인 바다가 보일 만한 곳에 다다르니 다행히도 해는 아직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해의 모습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노을의 장관을 눈에, 그리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모슬포의 노을

  아내와 단둘이 떠나온 4박 5일 제주 여행의 네 번째 날. 내가 좋아하는 올레 10코스를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아름다운 일몰을 보며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어서 뜻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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