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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l 27. 2022

외돌개를 지나 화순으로

아내와 단둘이 제주여행 3일 차

  제주여행 3일 차는 숙소 근처 식당에서 먹은 갱이국으로 시작했다. 제주 토속음식인 갱이국은 게를 갈아 넣은 미역, 전복과 함께 끓여 낸 국이었는데 바다향 가득한 맛이 일품이었다. 말 그대로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내 모습을 보며 아내도 놀란 눈치였다. 아침으로 순대국밥이나 돼지국밥을 먹을까 잠깐 고민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갱이국을 안 먹었으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바다향 가득 갱이국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올레길 7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제 긴 행군의 피로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한 아내는 시작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늘 보병 출신이라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던 나도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아 과연 오늘 코스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천지연 폭포


  공원을 따라 나 있는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완만했던 코스의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더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가 산으로 접어드는 길로 안내했다. 삼매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그리 가파른 길은 아니었지만 전날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는 마냥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가방에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느릿느릿 걷는 우리의 모습을 누가 보면 흡사 거북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리라.


  한걸음 한걸음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으며 듣는 경쾌한 새소리, 서귀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풍경, 그리고 잠시 앉아 쉬며 까먹는 새콤달콤한 귤의 맛은 참 좋았다. 배낭에 한 봉지 가득했던 귤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덩달아 가벼워지는 배낭은 더더욱 좋았다.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온 몸을 적신 땀을 잠깐 말리고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니 외돌개로 향하는 길이 나왔다. 외돌개로 가기 전 선녀탕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스노클링도 하고 물놀이도 하는 곳이 있었는데, 물놀이 차림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였다.


외돌개


  외돌개부터 카페까지 가는 길은 참 길게 느껴졌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음에도 금방 배고파지는 트래킹의 마법이란... 설상가상으로 해변가의 멋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모닝커피를 마시지 않고 출발한 것도 피로를 더한 것 같았다. 평소에는 하루에 몇 잔씩, 심지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겁 없이 커피잔을 들이켜는 나로서는 커피가 절실했던 것 같다. 긴 발걸음 끝에 도착한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도 한 잔 하고, 달콤한 빵도 한 조각하니 비로소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숨 돌리면서 책도 읽고 경치 구경도 하니 시간도 금세 흘러갔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선사한 카페


  길고 길었던 해안길에서 잠시 벗어나 시내에서 잠심으로 흑돼지 두루치기를 먹고 다시 해안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섬들과 들쑥날쑥 제멋대로인 해안의 까만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물질해온 성게들을 손질하는 해녀들, 한가득 잡아 줄에 꿰어 온 놀래미들을 풀어 두는 어부들, 한가로이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들, 가벼운 차림으로 올레길을 걷는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 하나같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니 제주라는 곳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앞만 보고 바쁜 걸음을 걷다 잠시 멈춰 서서 걸어온 길들을 다시 둘러보니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는 통에 지난 시간들이 지닌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살펴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게 아닐까.


자꾸 생각나는 두루치기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아직 갈 길이 멀다


  시간도 늦었고, 마침 숙소가 있는 화순행 버스 시간이 되어 강정천 인근에서 오늘의 걷기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제 남은 여행 일정이 지나온 일정보다 더 적게 남았음이, 춘천에서 오매불망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딸내미를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실감이 난다. 부디 오늘 밤은 나와 아내 모두 세상모르게 푹 곯아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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