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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l 26. 2022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제주 해안길을 걷다

아내와 단둘이 제주여행 2일 차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올레 6코스 출발 지점인 쇠소깍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 쇠소깍 까지는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가물어서 바닥을 거의 드러내다시피 한,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을 내려다보며 걷는 길. 푸른 하늘과 초록 초록한 가로수, 풀들과 도로가 빚어낸 풍경이 아름다웠다.


 

  

하효쇠소깍 해변에 이르니 검은 모래 해변과 탁 트인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검은 모래의 신비로움과 고요하고 잠잠한 바다의 마법 같은 풍경을 아내는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알록달록한 파라솔 아래 돗자리를 펴 놓고 한가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 검은 모래사장을 신나게 뛰놀고, 모래놀이하느라 정신없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집에서 아빠와 엄마가 상어와 귤을 양손에 들고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해솔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소원김밥이라는 작은 김밥집에서 김밥과 라면, 어묵으로 속을 채우고, 테라로사 커피에 가서 커피와 빵으로 부족한 카페인과 에너지를 보충했다. 커피와 빵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뒤에 있던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예전 같으면 눈살을 찌푸렸을 텐데... 이제는 아이가 왜 울기 시작했을까 걱정이 되고, 아이의 엄마 아빠는 이 상황이 얼마나 난처할까 공감이 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우리도 영락없이 아이 키우는 부모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제는 다른 아이가 우는 일도 남일 같지 않다고 했다.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눈에 가득 담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백두산 천지를 축소해 놓은 듯한 아름다운 소천지를 앞에 두고 아내와 귤을 까먹으며 나누었던 앞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관한 이야기들도 흥미로웠고, 길가에 있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예쁜 집들을 보며 언젠가는 우리 부부도 양양이나 제주에 예쁜 집을 짓고 살면 참 좋겠다며 나눈 이야기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소정방폭포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에 발을 담그니 피로와 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아내는 서귀포에 다다랐고, 다음 목적지인 이중섭 거리에 도착했다. 이중섭거리 초입에 있는 카페 메이비에서 나쵸와 곁들여 마신 생맥주 한 잔에 소정방폭포에서 반쯤 풀렸던 피로와 긴장이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쇠소깍부터 서귀포까지 걷는 내내 많은 사람들을 마주쳤지만, 땡볕 아래 우리 부부처럼 달팽이처럼 등짐을 짊어지고 걷는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남들 다 하는 것들에는 큰 관심이 없고,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점에서 우리 부부는 참 잘 만났다고 이야기하며 한참을 웃었다.



  

아내와 단둘이 떠나온 제주 여행의 두 번째 날도 저물었다. 이제 남은 일정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춘천에서 엄마 아빠를 찾고 있을 딸내미 곁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마음이 설렌다. 내일은 해솔이에게 들려줄 어떤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떤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줄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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