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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l 25. 2022

자 떠나자 상어 잡으러!

아내와 단둘이 제주여행 1일 차

  아침에 여유를 부리다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하여 춘천에서 양양공항까지 운전하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3년 동안 출근길이었던 인제 IC를 지나는 익숙한 길이라 나름의 믿는 구석도 있었지만, 4박 5일 동안 아빠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이모와 함께 있어야 하는 딸을 두고 발길이 잘 안 떨어지는 바람에 출발 시간을 5분만... 5분만 하며 더 늦춘 탓도 있었으리라.


  양양 공항에 도착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더웠다 비가 왔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복잡한 주차장에 4박 5일 동안 고이 세워둘 차 걱정, 과연 제시간에 짐을 부치고 비행기에 무사히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것은 태어나고 나서 가장 오랜 시간 아빠, 엄마와 떨어지게 된 해솔이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었다. 공항에서 만난 아내의 지인 가족을 포함하여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다른 가족들을 보니 해솔이 만한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순탄치 않았던 한 학기를 무사히 보내고 오랜만에 직장과 육아에서 벗어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며칠 전부터 들떠있던 나와 아내는 무사히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마음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한라산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고기국수로 주린 배를 채우고 숙소가 있는 남원읍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가 생기고 난 후, 특히 해솔이가 세상에 나오고 난 후로는 통 이용해 볼 기회가 없었던 버스를 오랜만에 타니 기분이 새로웠다. 버스 맨 앞 좌석에 앉아 바라보는 제주의 풍경은 내가 운전하면서 바라보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아내와 매년 한 번씩은 함께 찾았던 곳 제주, 곳곳에 크고 작은 추억을 간직한 곳임에도 목적지까지 신호 신경 쓰랴, 주변 차들 신경 쓰랴, 제대로 길은 찾아가고 있는지 신경 쓰느라 이전에는 여유 있게 보고 느낄 새 없이 지나치기 급급했던 장소들, 추억을 소환하며 그때의 감정을 되새기니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여정 동안 비록 몸은 불편했다만 지루할 새가 없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숙소 인근 카페에서 아내와 메밀 커피를 마셨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여느 제주 카페들과는 달리 손님이 많지 않아 고요한 점이 참 좋았다. 5월과 10월에는 카페 창밖으로 하얀 메밀꽃의 파도가 출렁인다는데, 비록 메밀꽃 구경은 못 했지만 이번 여행 동안 큰 목적 없이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던 아내와 나의 여행 목적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출입문을 열자마자 콧속으로 밀려들던 그윽한 편백나무 향도 좋았고 달짝지근하고 구수한 커피 맛도 좋았다. 들판에서 한가로이 뛰노는 강아지, 카페 곳곳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조형물과 소품들을 보고 있노라니 '해솔이와 함께 찾았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여독을 풀어주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아이가 참 좋아했을 조경과 소품들


  커피를 마시고 올레길 5코스를 따라 남원포구를 향해 걸었다. 2014년 아내와 연애시절 처음 함께 제주를 찾았을 때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길을 걸으며 아내와 나눈 추억 이야기, 해솔이에게도 보여줬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한 거미, 도마뱀, 바람개비와 오징어 말리는 모습 등 길을 걸으며 나눈 이야기, 떠올린 생각, 눈에 담은 풍경 등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거미를 보니 딸내미의 거미 동요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해안길을 걸으며 만난 인디언 추장 얼굴

  저녁은 숙소 인근 식당에서 흑돼지를 먹었다. 제주에 오기 전부터 제주에서 첫날 저녁은 흑돼지를 먹겠다고 나와 아내 모두 벼르고 별러 왔었는데 드디어 소원 성취를 했다. 노릇하게 익은 두툼한 고기, 깊은 맛이 일품이었던 김치찌개가 참 맛있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딸내미 생각이 가시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아내도 이제는 뼛속까지 부모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앞으로 해솔이가 스스로 따라가지 않겠다고 따라나서지 않을 때까지 우리 둘만 쏙 여행을 떠나는 일이 없겠노라며 아빠와 엄마는 흑돼지 한 상을 차려두고 결의를 다졌다.


제주에 오면 흑돼지는 먹어야지


  아빠, 엄마가 제주에서 해솔이가 좋아하는 상어를 잡아오겠다며 어르고 달래 둘이 떠나온 제주 여행. 아이에게 들려줄 신기한 이야깃거리와 보여줄 풍경 사진들도 부지런히 모으고, 앞으로 더 좋은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마음을 다지고, 각자 일 하랴, 육아하랴 정신을 쏙 빼놓고 다니느라 오롯하게 함께 보낼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아내와 좋은 추억을 만들며 알찬 4박 5일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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