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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16. 2022

어른아이

서른다섯 피터팬의 갈등

  아내는 나더러 피터팬 같다고 이야기한다. 철이 없다는 얘기다. 선생님, 남편, 아빠는 사실 잘 포장한 가면이고, 사실은 꿈과 환상이 가득한 서른다섯 살 어른아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요즘같이 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시기가 있었나 싶다. 지금껏 그런 생각을 떠올릴 겨를 없이 바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학교 다니고, 직장에 다니고,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한 선택과 결정 중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것이 몇 개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교직에 몸담게 된 것도 순전히 성적에 맞춘 결과였다. 그렇다고 해서 학창 시절 뚜렷한 꿈과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학창 시절의 나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할 생각조차 못 했다. 그저 남들 하는 것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이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속에서 만들어진 내 모습이 진짜인 줄 알고 살아왔다.     


  교직에 나와서도 나의 교육철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모방하고, 또래 동료들의 행보와 비교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 결과 3, 4년을 주기로 나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하다는 회의감을 느끼며 교직 갈등을 겪었다. 올해도 9년 차를 맞아 불청객이 또 찾아왔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세 번째 찾아온 교직 갈등은 앞선 두 번의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학교의 구조와 문화 때문에, 두 번째는 승진 가산점과 성과 상여와 관련하여 선배들과 겪은 외적인 갈등이었다. 하지만 이번 갈등은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된 내적인 것으로 잘만 이겨내면 어른아이 딱지를 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그 근원에 있는 나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곱씹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교육과 육아가 과연 아이들이 생각하는 힘을 다져줄 수 있을지 자문하는 과정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제자들과 딸내미에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른아이 증후군을 피할 수 있는 소소한 팁이 된다면 그보다 가치 있는 것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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