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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16. 2022

미루다 죽는다

눈 덮인 도로의 극약 처방

춘천에 아침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하얗게 펼쳐진 눈 세상은 아름다웠다. 교정의 앙상했던 나무의 가지마다 화사한 눈꽃이 피어났고, 삭막했던 운동장은 하얀 도화지로 변했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도 구멍 뚫린 하늘을 향해 솟아 올라갈 기세로 한껏 들떴다.   

  

  순백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내 마음은 불편했다. 지난 주말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 게으름 탓이었다. 5교시 수업을 마치자마자 출장을 가야 하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눈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얀 솜털이 창을 가득 채울수록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타들어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은 그칠 줄을 몰랐다.     


  수업을 마치고 출장을 가는 길, 아침부터 내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뒷바퀴를 굴리는 차에 여름용 타이어는 눈 덮인 도로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도로 위에서 생각지도 않은 썰매를 타고, 속도도 제대로 내 주변 차들에 민폐 끼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연수 장소와 가까운 타이어 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좀 더 알아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타이어 교체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정했다.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앞에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수도 참석했고 타이어도 교체하여 안전하게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 동안 느꼈던 아찔함과 무력감은 진한 여운을 남겼다. 만약 오늘 같은 상황 속에서 아내와 딸내미가 함께 차에 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미루는 버릇이 내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던데 요즘 읽고 있는, 미루기와 관련된 책 보다 눈 덮인 도로에서의 아찔한 경험이 내게는 더 맞춤형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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