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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14. 2022

철새가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까닭

  "겨울에는 김장을 하니까 김치를 얻어먹으러 철새들이 오는 거예요."


  "하하하"


  ○○이의 대답에 고요했던 교실에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평소 같으면 원체 웃음기도 없거니와 수업이 산으로 가도록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엉뚱한 대답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나도 웃음 참기가 힘들었다. 찰나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 김치를 얻어먹으러 김장하는 집을 기웃거리는, 먼 길을 날아왔을 오리와 기러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장 김치를 얻어먹으러 날아오는 그 길이 얼마나 험난했을까…. 왜 하필 김치를 얻어먹으러 왔을까…. 오리와 기러기도 김치가 건강식품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으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에 터져버린 웃음, 마스크가 함박웃음이 터진 웃음을 잘 가려줬기에 망정이지 아이들 앞에서 스타일 제대로 구길 뻔했다.


  한 번 웃음바다가 된 교실의 분위기는 수업을 마칠 때까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무슨 수업을 하든 책상에 머리를 콕 박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녀석들, 수업 시간 끝나기까지 분 단위, 초 단위까지 미세하게 움직이는 벽시계의 우아한 운동을 놓칠세라 벽 한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까지 한 마디씩 거들겠다고 손을 들고 연신 '저요! 저요!'을 외쳤다. 잔뜩 신이 난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떠들었더니 오늘의 마지막 수업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갔다.


  학기말이 되면 아이들은 곧 다가올 겨울 방학 생각에 잔뜩 신이 난다. 아직 한 달 가까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겨울 방학 숙제를 적게 내 달라는 이야기, 겨울 방학에 떠날 가족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다. 나도 수업 진도와 교과 평가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학기말이면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진다. 수업 준비에 쏟는 시간, 가르치는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아이들의 성취, 평가로부터 해방되면 그만큼 아이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어느덧 12월의 절반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간다. 26명으로 시작하여 이제는 23명이 남은, 아직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많게 느껴지는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이들 때문에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즐거운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가뜩이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하는데 마스크까지 쓴 바람에 담임 선생님 웃는 얼굴 구경을 많이 못한 아이들 모르게 킥킥거리며 웃었던 순간들이 생각해 보면 참 많았다.


  매번 학기말 같은 여유로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아이들과 좀 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여유롭게 마음을 보내겠노라고 다짐은 하지만 늘 학기말이 아쉬움이 가득한지 모르겠다. 학기말이 되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내일은 아이들과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늦은 밤 책상에 앉아 수업 시간에 어떤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오고 갈지…. 내일의 웃음 봇물은 어떤 아이가 터뜨릴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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