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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13. 2022

알뜰시장

충동구매를 부르는 마법의 문장

“막 집어오지 말고 해솔이가 가지고 놀 만한 인형 한두 개만 사와.”   

   

  전교 어린이회에서 주관하는 알뜰시장이 열리던 날. 출근하기 전 주섬주섬 천 원짜리 지폐를 챙기는 나에게 아내가 신신당부했다. 집에 물건을 들이기만 할 뿐 비울 생각은 일절 않는 남편과 아빠를 닮아 물건을 수집하기 좋아하는 딸내미와 달리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아내의 분부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함께 산 시간이 벌써 5년. 알뜰시장 기분만 내고 올 테니 걱정 말라며 집을 나섰다.

     

  코로나 시국 이후 처음으로 알뜰시장이 열린 날. 비록, 요즘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와 독감 예방을 위해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누고, 학부모회가 참여하는 먹거리 장터 등의 행사는 없었던 탓에 조촐했지만, 저마다 돗자리를 펼쳐놓고 물건을 사고파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코로나 시국 이후 학교에서 아이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덩달아 어른들의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알뜰시장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좋은 물건을 사겠다고 벼르던 아이들의 세찬 파도가 한 번 몰아친 후, 평온을 되찾은 장터를 한 바퀴 돌았다. 우리 교실과 반대편에 있는 탓에 얼굴 볼 일이 많이 없어 아직도 낯선 3학년 아이들이 있는 구역을 지나고, 교실에서부터 갖가지 인형과 장난감을 홍보하더니 역시나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어렵게 이쪽저쪽에서 손을 잡아 끄는 우리 반 아이들이 있는 구역을 지나 1학년 아이들이 있는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 3학년 언니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씩씩하게 물건을 펼쳐놓고 있는 1학년 아이들이 참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물건 구경을 하던 중 유독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이 펼쳐놓은 물건들은 하나둘씩 새로운 주인들을 찾아 자리를 떠났는데 아직도 아이 앞에 제법 놓여 있는 인형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괜찮은 인형이 있으면 하나 집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 앞에 웅크리고 앉아 인형들을 살피는데 인형 하나하나 앞에 놓여 있는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누군가 사면, 소중하게 간직해 주세요.’

     

  제법 손을 타서 낡은 인형들, 평소라면 눈길이 잘 가지 않았을 인형들이었는데… 연필로 꾹꾹 눌러쓴 아이의 글씨와 마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인형들의 애절한 눈빛을 보니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얼굴에서 한창 어린이집에서 집에 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을 장난꾸러기 딸내미의 얼굴이, 인형들의 얼굴에서 우리 집에 있는 아이의 손때 가득 묻은 상어와 토끼 인형이 떠올랐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등교했던 강아지 인형과 사자 인형은 우리 반 아이에게 입양한 상어 모자, 당나귀 인형과 더불어 나와 퇴근길을 함께 했다.

      

  딱 한 개만 사 오겠다며 큰소리치며 나간 남편이 한 손에는 가방, 한 손에는 인형을 잔뜩 들고 퇴근하는 모습을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내. 꼬깃꼬깃 접힌 쪽지를 내밀었더니 이번에는 눈감아주는 눈치다.


      

  아빠와 함께 돌아온 새로운 인형들이 마음에 드는지, 딸내미는 오래 가지고 놀던 인형처럼 밥도 챙겨주고, 그림책도 읽어주며 따뜻하게 보살펴준다. 오래도록 정들며 함께 지냈을 인형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했을 1학년 아이의 마음도 한결 편하리라 생각하니 나의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는, 새로운 눈과 심장을 얻는 마법과 같은 경험이라는 것을 이번 알뜰시장을 통해 새삼 느꼈다. 새로이 식구가 된 인형들이 오래도록 딸아이의 소중한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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