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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09. 2022

딸아이의 수술날

딸내미 생애 첫 입원기 - 둘째 날

  강대 병원 사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해솔이 이제 수술실 들어가니까 천천히 와.”

     

  해솔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얼굴을 보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했지만 결국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침에 눈 뜨기가 무섭게 맛있는 것을 달라며 아빠를 깨우곤 하는 딸, 그런 아이가 아침도 먹지 못하고 수술실이라는 낯선 환경과 어린 나이에 경험하게 되는 수술이라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앞두고 겪을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게으른 탓에 두려움 속에서 아직 나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술실의 낯선 공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딸내미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아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딸내미의 수술실 들어가는 모습을 힘겹게 바라보았을 아내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남편, 세상에서 가장 못난 남자의 모습으로 병원에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수술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담당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내는 수술실에서 아이가 마취에서 깨어나길 기다리고, 나는 병실로 향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병실에서 기다리는 아빠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해솔이는 도통 병실로 돌아올 기미가 안 보였다. 마취에서 깨어나 오열하는 해솔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아내의 힘겨운 시간, 병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속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작년 가을 해솔이와 목장에서 토끼 구경을 하다 토끼에게 손가락을 물려 깊이 베인 상처 사이로 흐르는 붉은 피를 바라보며 119 구급대가 도착하길 하염없이 기다리던,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던 아픈 기억도 불현듯 떠올랐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선생님에게는, 다른 이들에게는 길어야 2-30분 걸리는 간단한 수술이라지만 만에 하나 수술을 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마취에서 무사히 잘 깨어날 수 있을까… 온갖 상상을 하며 아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무력한 이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을 터이다.

     

  우여곡절 끝에 병실로 돌아온 해솔이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들어왔다. 평소 딸내미의 씩씩한 모습과 달리 잔뜩 놀라고, 힘없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속상했다. 마취가 깬 후 6시간 동안 해솔이에게 잠을 재울 수도, 음식을 먹일 수도, 심지어 물도 먹일 수도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 나도 속상하고 애가 탔지만 당사자인 해솔이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물을 달라며 한참을 보채던 아이는 평소와 달리 순순히 물을 내주지 않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한참을 떼를 쓰다 지쳤는지 곤히 잠이 들었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절대 아이를 재우지 말라던 간호사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한참을 떼를 쓰다 힘없이 잠든 아이를 차마 억지로 깨울 수가 없었다.

      

  해솔이가 잠들어 있는 동안 건너편 침대에 먼저 입원해 있던 아이가 퇴원했다. 고요해진 병실에는 다른 병실에서 들려오는 4층 전체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우는 아이, 아이를 달래려고 애를 쓰는 부모의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저 아이는 어린 나이에 어디가 불편해서 병원을 찾았을까’, ‘아이 부모님의 심정은 얼마나 복잡할까’를 떠올리니 지난밤 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자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는 해솔이, 그리고 적막해진 늦은 시간의 병실에서 해솔이를 달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아내의 모습도 이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평소에는 낮잠도 안 자겠다, 밤잠도 안 자겠다 버티는 통에 아빠 엄마를 힘들게 하는 해솔이, 이날은 재우지 않으려고 계속 말을 걸고, 시키지도 않은 상어 그림을 그려주고, 갖은 재롱을 피우면서 물과 주스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모르게 잠을 잤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해솔이는 우려했던 대로 물을 찾았다. 물을 줄 수 없다는 아빠, 엄마의 단호한 모습에 해솔이의 오열과 투정이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이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가 없어 아이에게 물을 먹이면 안 되는지 담당 간호사님께 여쭤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안 됩니다’였다. 우는 아이를 보며 속이 타들어가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너무 싫었다. 당번 교대를 하고 한참 전에 집으로 돌아갔어야 할 아내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해솔이의 곁을 오랫동안 지켰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간 후 해솔이의 반응이 시큰둥하긴 했지만, 그림책도 읽어 주고, 휴대폰 사진첩에 있는 어린 시절의 해솔이 사진도 함께 보며 영겁의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 간호사님께 한 시간 뒤부터 아이에게 물을 먹여도 된다는 말씀을 듣기가 무섭게 아이와 병실을 떠나 본관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해솔이가 좋아하는 주스 세 개, 요즘 해솔이가 푹 빠져버린 달걀 모양 초콜릿도 한 개 샀다. 병실로 돌아가기 전 베이커리에 들러 나를 위한 빵 하나와 커피 하나도 샀다. 자칭 커피 중독인 내가 카페인 충전 없이 보낸 하루가 길었기에 얼른 커피를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고 싶다는 유혹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물도 마시지 못한 해솔이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꾹 참고 커피를 주스와 함께 냉장고에 고스란히 넣어 두고 4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오전 10시부터 아이와 함께 길고 긴 시간을 참았지만, 4시가 되기까지 남은 시간 20분…, 10분이 무척 더디게 흘렀다. 


커피와 주스를 잔뜩 사서 병실로 돌아가는 길

     

  해솔이는 정작 4시가 되자 신나게 물을 마시더니 곧 잠이 들었다. 마시고 싶다고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던 주스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졌는지, 물을 마셨더니 긴장이 확 풀린 탓인지 꼭 쥐고 있던 주스도 아이 곁에서 함께 한동안 누워있었다. 해솔이가 잠든 사이 담당 교수님이 다녀가셨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씀, 그리고 별일이 없으면 내일 오전 퇴원할 수 있을 거란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좀 놓였다. 잠든 해솔이 곁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잡지를 읽었다. '삶을 죽음에게 묻다'라는 주제로 엮인 철학 잡지였는데, 병실에서 그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내미 옆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지니 책에 담긴 의미가 좀 더 깊이 와닿는 것 같았다. 


잠든 딸 곁에서 생각에 잠기다


  병실에서 해솔이와 함께 보낸 저녁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흘러갔다. 중간중간 블랙아웃이 일어난 기억의 흐름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속옷과 바지를 입지 않겠다며 투정을 부리던 해솔이의 모습, 곤히 자다가 갑자기 이불에 지도를 그린 바람에 나는 당황스럽고 난처했지만 아빠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던 해솔이의 모습, 다른 병실에서 우는 다른 아이 소리에, 그리고 딱딱한 침상과 머리맡에 있는 작은 냉장고의 소음에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던 나….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면 아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해솔이와의 추억 퍼즐의 한 조각을 완성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병실에서 힘들어하던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아이가 잠든 시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지금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해솔이의 수술 날 추억은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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