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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09. 2023

학교 안 작은 텃밭 가꾸기

모종 심기와 함께 한 해 농사 시작

오늘은 화창하다 못해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날이었다.


1교시와 2교시, 춘천시 자전거 시민학교에서 준비한 자전거 타기, 자전거 안전교육을 마치기가 무섭게 아이들과 함께 목장갑과 모종삽으로 무장을 하고 학교 건물 구석진 곳에 있는 텃밭으로 향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발령받은 첫 해에는 아직 학교 곳곳에 어떤 곳이 있는지 잘 파악이 안 되기도 했고, 발령을 축하하며 창궐한 코로나19 때문에 텃밭의 존재조차 몰랐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작년에는 학교에 다시 적응하느라 텃밭을 가꿀 생각조차 못 했다. 작년까지 학급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도맡아서 가꾸시던 선생님이 올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는 바람에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텃밭을 올해 2학년 꼬맹이들, 옆반과 함께 가꾸기로 하였고 오늘 모종 심기를 시작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하였다.


2학년, 옆반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9개의 이랑 중 2학년의 1개, 옆반의 2개를 빼고 나머지 6개를 우리 반이 관리를 하게 되었다. 사실상 우리 밭에 다른 학급이 '주말농장' 형식으로 농사를 짓는 꼴이 되었다. 총대 메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데 어쩌다 보니 농사를 도맡아서 하게 된 상황. 농사의 '농'자도 모르고, 집에 계신 5살짜리 상전에게도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에 15명의 학급 아이들, 앞으로 케어해야 할 자식(?)들이 늘어난 선생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키울 식물들이 많아 좋다며 해맑게들 웃었다.


토마토


가지


고추


상추


농사 경험이 풍부하신 학교 보안관님의 도움을 받아 이랑에 살 씌워진 비닐에 구멍을 내고 모종을 심었다. 토마토 두 줄, 청양고추 한 줄, 아삭이 고추 한 줄, 가지 한 줄, 오이 한 줄, 그리고 상추 이열 종대로 한 줄.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손과 옷에 흙이 묻는 줄, 물조리개로 자리 잡은 모종에 물을 주다 검은 비닐을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에 양말이 젖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모종을 심었다. 썰렁했던 밭을 갖가지 초록이들로 채웠다. 


썰렁했던 텃밭을 가득 채운 초록이들


앞으로 잘 보살펴줄게!


원래 모종 심는 시간을 넉넉하게 한 시간 반 정도 예상하고 밭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모종을 심을 덕분에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은 아이들은 시원한 아이스크림, 나는 시원한 캔커피로 더위를 달랬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열리는 데 인색했던 지갑이 열리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 캔커피가 꿀맛이었다. 이러다 밭에 갈 때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기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잠시 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해 동안 애정을 갖고 보살필 수 있는 작물들이 있다는 것, 정성으로 키운 채소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며 생명의 소중함, 자연의 신비, 노동의 가치 등 풍부한 것들을 함께 느끼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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