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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17. 2023

둘째 성별의 수수께끼가 풀린 날

새로운 고민의 시작

오늘은 임신 16주 차에 접어든 아내가 병원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함께 병원을 찾으면 좋으련만, 오늘 오후 중요한 회의가 있었던 탓에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지 못했다.


남이섬으로 소풍을 다녀와 피곤함을 한껏 뽐내던 까칠한 딸내미와 함께 집으로 들어서니 이미 병원에 다녀온 아내가 물었다.


"아빠가 직접 들을래, 아니면 해솔이한테 들을래?"


10월에 태어날 예정인 둘째의 성별에 대해서는 특별히 기대한 것이 없었다. 딸이든 아들이든 건강하게 세상에 나와주기만을 간절히 기원할 뿐. 태명을 '똑딱이'라고 지은 것도 엄마 뱃속에 똑바로 딱 붙어 있으라는 아빠 엄마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특별히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막상 아내에게 결과를 들으려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렸다. 


"해솔이한테 들을게, 나 못 듣겠어."


아내는 딸내미를 꼭 안더니 이야기했다.


"해솔아 해솔이 이제 누나 되는 거야. 엄마 뱃속에 있는 동생이 남자 동생이래."


얼마 전까지 동생이 '해솔이는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 남동생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하던 해솔이는 잠시동안 생각에 빠졌는지 말이 없었다.


"해솔이 남자 동생 생겨서 기분이 어때?"


"응, 좋아."


"해솔이 아빠는 어때?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나는 전혀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성별이 뭐가 중요해 건강하게 우리 곁에만 오면 되지."


둘째 성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작은 기대라도 어떤 특정한 성별을 기대하다가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혹시나 실망하지는 않을까, 그 실망으로 인해 새로이 가족이 될 아기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껏 성별에 대한 생각, 고민이라면 고민을 잘 미뤄 왔었는데…. 오늘 갑작스럽게 둘째가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여러모로 생각이 참 많아지는 것 같다. 


해솔이를 키우면서 가졌던 육아의 방향, 그리고 앞으로 아빠로서 딸에게 몸소 보여줄 본보기와 같은 모습들은 과연 아들을 키울 때와 같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지난 유년 시절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어떠했던가 대한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억들과 흐릿한 기억들…. 수많은 생각들이 아내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성별만큼 다른 성향을 가졌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두 아이에게 각각 든든한 버팀목이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행동 철학을 몸소 보여줘야 하기에. 지금보다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내는 혹시라도 둘째의 성별이 아들이라 지금껏 양가 어른들의 관심이 쏠렸던 해솔이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워한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무슨 그런 걱정을 하냐며 아내를 안심시켰지만, 내심 해솔이가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크고 작은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두 아이에게 쏟는 애정의 중심점을 잘 잡고, 혹시 모를 아이들의 성별 역할에 따른 주위의 편견에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을 쏟는 아빠가 되고 싶다.


똑딱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서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 해솔이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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