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Apr 21. 2023

"우리 아빠 최고야!"

몸치 아빠도 춤추게 하는 딸내미 표 칭찬의 힘

해솔이는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일찍 눈을 떴다. 온몸으로 보내는 아빠의 더 자고 싶다는 신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거실에 나가자고 졸랐다. 한참을 졸라도 아빠가 꿈쩍도 하지 않자 딸내미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무적의 치트키를 사용했다. 무적의 치트키가 나오면 그 어떤 상황이라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아빠, 쉬 마려워요."


그렇게 비몽사몽 시작된 오늘 하루. 요즘 들어 밤에 깨는 일 없이 숙면의 정석을 몸소 보여주는 해솔이는 컨디션이 좋아 보였던 반면 밤만 되면 끝도 없는 생각에 바다에 잠기는 나의 행색은 병든 닭 그 자체였다. 아침부터 클레이 점토를 가지고 놀고 싶다는 딸내미를 애써 뜯어말려 그림책 쪽으로 관심을 돌려놓은 후 아내가 일어나기 전 틈새 잠을 노리며 소파에 눕기가 무섭게 해솔이의 두 번째 치트키가 등장했다.


"아빠, 배고파요."


'오늘도 틀렸구나!' 하는 마음으로 서로 마주 붙은 눈꺼풀이 채 떨어지지 않은 눈을 비비며 주방으로 향했다. 임신 12주 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입덧이 가라앉을 기미가 없는 아내. 냉장고 문만 열어도 아내의 몸이 무조건반사 수준으로 반응하는 탓에 요즘 아침 식사는 오롯하게 나의 몫이다. 한식이 잘 안 받는다는 아내를 위해 지난밤 빵집에서 사둔 소시지 빵이 있었기에 아내의 몫은 걱정이 없었다. 냉장고와 사이가 멀어진 틈을 타 냉장고에 있는 온갖 반찬들을 독점하기 시작한 나의 몫도 걱정이 없었다. 늘 고민인 것은 해솔이의 아침거리다.


아침에는 밥을 먹기 싫다고 투정하는 탓에 밥을 먹이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 빵 아니면 시리얼인데 어제 아침으로 이미 보리빵은 먹었고….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오늘도 빵이다. 주 메뉴가 빵이라면 사이드 메뉴를 다채롭게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아침이면 늘 품절 릴레이를 이어가는 사과를 깎아놓고, 먹을 만한 게 없나 싶어 냉장고를 살피는데 마침 눈에 그저께 먹다 남은 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씻어 먹자니 싱싱해 보이지는 않는 딸기. 믹서에 갈아서 딸기 우유를 만들어 먹기에 딱이다. 


"해솔아, 아빠가 딸기 우유 만들어 줄게."


딸기를 씻고, 꼭지를 칼로 잘라내고, 주섬주섬 믹서를 꺼내 딸기를 담고, 꿀 두 스푼과 우유를 부어준 후 믹서기를 작동시켰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터가 돌더니 짠 하고 만들어진 딸기 우유. 우유를 내어 갈 컵을 찾아 어젯밤 돌리고 난 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식기세척기를 뒤적거리는데 어느새 식탁에 앉아 있던 해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빠 최고야!"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내 귀를 의심했다. 


"해솔아 뭐라고?"


"아빠 최고야!"


"고마워, 아빠도 해솔이가 세상에서 최고야."


아빠가 최고라는 딸내미의 한마디에 아침부터 일찍 눈을 뜬 것이 억울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고객(?)의 만족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친절왕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내는 나 같은 몸치는 평생 본 적이 없다고 늘 얘기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뒤늦게 식탁에 합류한 아내는 아침부터 왜 기분이 그리 좋아 보이냐고 물었는데, 사연을 듣고 나서 나처럼 단순한 사람은 세상에 또 없을 거라며 웃었다.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해서 그런지 하루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해솔이 눈에 비친 아빠의 오늘은 어땠을까. 늘 해솔이와 함께 하는 퇴근길이면 갖은 핑계를 대고 놀이터에 가고 싶은 딸내미의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게 유도하는 아빠가 오늘따라 먼저 놀이터에 가자고 한다. 인형을 들고 가도 되냐고 물으면 늘 위험하다는 핑계로 차에 두고 가게 하는 아빠가 오늘따라 순순히 가오리 인형을 들고 가도 된다고 한다. 평소에는 곧장 놀이터로 향하는 아빠가 오늘따라 단지에 예쁘게 핀 꽃구경을 하자며 이리저리 데리고 다닌다. 한걸음 옮기기가 무섭게 하얀 솜털이 가득한 민들레 씨를 '후' 하고 불고 싶다고 발걸음을 자꾸 멈춰도 느긋하게 기다려 준다. 하얀 클로버 꽃으로 예쁜 팔찌도 만들어 준다. 집에 들어와서는 피곤한 티도 안 내고 함께 신나게 그림 놀이를 해 준다. 오늘따라 아빠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게 얼마 만에 손목에 차 보는 꽃팔찌야?


오늘 아빠가 좀 이상한데...


지난 몇 주를 돌아보면, 아내의 컨디션 난조로 육아와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내가 담당하게 되면서 사실 해솔이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고, 신나게 놀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아빠를 좋게 생각해 주는 사랑스러운 딸내미 덕분에 더욱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크나큰 사랑으로 보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오늘 하루였다.


"해솔아, 그런데 아침에 왜 우리 아빠 최고라고 했어?"


"응, 아빠가 딸기 우유 잘 만들어서."


"..."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지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