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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y 10. 2023

이제 그네 혼자 탈 수 있다!

딸내미가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그네에 오른 날

* 오늘은 딸내미가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그네에 오른 역사적인(?) 날이라 기록을 위한 기록을 남긴다.


저녁을 먹고 한참 시간이 흘렀다. 조금만 있으면 딸내미를 씻길 시간이 되기에 시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우리 집 하루 육아의 분기점은 목욕 전과 후로 나뉜다. 딸내미를 목욕시키는 일은 곧 딸내미를 꿈나라 여행을 보내겠다는 것. 그만큼 목욕이 갖는 상징성이 크기에 그날 육아가 즐겁든 고되든 나는 목욕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빠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내미는 가슴이 철렁할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 놀이터 가고 싶어요."


"해솔아, 이제 씻을 시간 다 됐는데? 내일 아빠 퇴근하고 같이 놀러 가면 안 돼?"


아내는 내 편을 들어주겠거니 생각하며 슬쩍 아내 쪽을 바라봤는데, 쐐기를 박는다.


"오늘 더워서 놀이터에 못 나갔는데, 잠깐 나가서 놀다 들어오면 안 돼? 저렇게 나가고 싶어 하는데?"


이쯤 되면 딸내미를 안 데리고 나갈 수 없다. 


잔뜩 신난 딸내미는 오늘 택배로 도착한 이모가 사 준 예쁜 공룡 원피스를 입고, 역시나 이모가 사 준 레고 블록이 그려진 재킷을 입고, 한 손에는 축구공, 다른 한 손에는 아빠 손을 꼭 쥐고 집을 나섰다.


잠깐 산책만 하고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놀이터를 바라보던 딸내미는 비어있는 그네를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딸내미가 달리는 길 킥보드가 끼어들까, 배달 오토바이들이 끼어들까 걱정되어 평소에는 느릿느릿한 나도 딸내미의 뒤를 무섭게 쫓았다. 그네를 노리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네는 전광석화같이 내달린 딸내미의 차지가 되었다.


나에게 해솔이의 그네 밀어주기는, 한 번 시작하면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 일종의 인내심 테스트이다. 금방이라도 내릴 것처럼 세워 달라다가도 내리기는 아쉬워 다시 밀어달라고 변덕을 여러 번 경험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해솔이의 변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네를 탔다 멈췄다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아빠의 혼을 쏙 빼놓더니 그네를 세워 달라는 분부에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겠지'라는 생각에 그네를 세웠다. 그리고 딸내미가 내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내리기가 무섭게 딸내미는 또 그네에 매달린다. 또 저러다 그네를 타겠다며 아빠보고 그네를 꼭 잡고 있으라고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잠시 시선을 휴대전화 화면으로 옮겼다. 


"나 그네 탔다."


잠깐 아내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 잔뜩 흥분된 딸내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네를 바라보니 그네에 앉아 있다. 분명히 내려 줬는데…. 몇 주 전 혼자서 그네 탄다고 매달렸다가 넘어진 후로 그네를 혼자 탄 적도 없고, 혼자 타게 내버려 둔 적도 없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해솔아, 정말 그네 혼자 탄 거 맞아?"


"응 내가 혼자 탔다!"


"아빠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응"


조심스럽게 그네에서 미끄러지듯 내린 딸내미는 줄을 잡고 끙끙거리며 그네에 다리를 올렸다. 겨우 무릎을 올려 양 무릎을 꿇었다가 다리를 하나하나씩 펴고… 뭔가 어설픔 가득한 동작이지만 결국 그네에 앉았다. 


"해솔아, 그네에 어떻게 앉는 거야"


"이렇게, 잡고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봤지?"


"나 이제 혼자 그네 탈 수 있다!"


"우리 해솔이 정말 대단한데! 멋진 공룡 같아."


"나 티라노사우루스 같지?"


잔뜩 신난 딸내미와 함께 그네를 신나게 타고 들고 간 공으로 신나게 공놀이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와서도 아내에게 혼자 그네에 오른 이야기를 한참 동안 자랑하던 딸내미는 평소보다 늦게 씻고, 평소보다 한참 늦게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딸내미가 늦게 잠든 만큼 오늘의 육퇴 후 자유시간도 확 줄었지만 그네에 혼자 올라 뿌듯해하는 딸내미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네에 혼자 오르다 넘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과연 우리 딸은 그네에 혼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딸내미의 성장, 발달과 관련된 모든 근심과 걱정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느꼈다. 그저 믿고 기다려주며 정성을 다해 응원해 주는 게 아빠의 역할이라는 것. 늘 조급한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려 하지 말고 해솔이를 좀 믿고 기다리라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뿌듯한 들지만, 나도 모르게 부쩍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느낀다. 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밤하늘의 별이라도 따 줄 것처럼, 세상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끄고 아이에게만 집중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는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무심하게 대한 적은 없는가, 부질없는 것에 집착하느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딸내미의 모습을 미처 눈에 담지 못하게 흘려보내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본다. 오늘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씩씩한 미소를 짓던 딸아이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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