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May 12. 2023

화창했던 날 정형외과 대소동

사고는 늘 방심하는 찰나의 순간에 발생하는 법

한여름 날씨처럼 화창하다 못해 덥기까지 했던 오늘. 


갑작스럽게 생긴 정형외과 대소동만 아니었다면 여느 날처럼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소동은 어린이 집 하원을 하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벌어졌다.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그새를 못 참고 장난꾸러기 딸내미는 꼭 잡고 가던 아빠 손을 놓고 후다닥 계단 쪽을 향해 달려갔다.


"해솔아 곧 엘리베이터 도착하니 계단으로 가지 말고 얼른 와."


예전에는 아빠 말을 고분고분 잘 듣더니, 요즘 들어 자기도 컸다며 반항기(?)가 가득한 딸내미는 "잠깐만 구경하려고 한 거야."라고 이야기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에서 내려오는구나,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겠네…라고 생각하던 순간, 적막함 속에서 열려있던 묵직한 문이 "끼익"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곧장 계단 쪽으로 향했는데 그 짧은 순간 해솔이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려 있는 문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집에서 아빠와 장난을 하듯 문들 닫고 아빠를 놀라게 해주려 했는지 문 열린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문을 닫으려다 묵직한 문에 아이의 손이 끼어버린 것이다. 


2년 전 이미 토끼 먹이를 주다 날카로운 토끼 이빨에 손가락을 다쳐 피를 철철 흘리는 딸내미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보며 가슴 찢어지는 마음으로 응급실로 향했던 아픈 추억이 순간 떠올랐다. 차분하게 손을 빼고 놀란 아이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 아비 된 자의 도리임에도 입에서는 따뜻한 말보다 버럭 호통이 먼저 나갔다. 마음은 안 그랬는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연신 울음을 터뜨리는 딸내미와 15층 집에 올라오기가 무섭게 아내에게 집 앞 정형외과에 예약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곧장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병원, 차를 타고 가는 그 짧은 동안에도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가득했다. 정말 많이 아팠겠다 하는 생각, 뼈는 괜찮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 그리고 그 중요한 순간에 왜 화를 냈을까 하는 생각까지…. 그리고 문득 토끼가 있던 목장에서 한림성심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119 구급차 안에서 울다가 잠들어버린 딸아이를 꼭 안고 속으로 괜찮기만을 수없이 빌고 빌던 오늘처럼 화창했던 어느 가을날을 떠올렸다.


병원도 도착해서 곧장 엑스레이를 찍었다. 걱정스러운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내미는 병원에 있는 엑스레이 사진, 의사 선생님 진료실에 있던 뼈와 근육 모형에 관심이 가는지 연신 "이게 뭐예요", "저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걱정스러워서 괜히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아픔보다 호기심의 욕구가 큰 건지….


엑스선 촬영 결과는 다행히도 정상이었다. 뼈에도 이상이 없고, 아이도 처음과는 달리 아파하는 기색 없이 병원에 있는 모든 것이 신기한지 질문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 진료실에 있는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화면에 나온 자기의 손 사진이 신기한지, "저거 뭐예요, 해솔이 뼈예요?", "왜 주변이 어두워요?"라고 끊임없는 질문을 하는 통에 나도 의사 선생님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 연신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진료실을 빠져나왔고, 아내에게 전할 기쁜 소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건(?) 발생부터 상황 종료까지 가슴 졸이던 약 40분의 시간. 마음속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롤러코스터는 드디어 멈춰 섰다.


오늘의 대소동을 겪으면서 아이와 함께 있는 순간은 단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되겠다는, 평온했던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진리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위급한 순간. 그 어떠한 순간에도 아빠로서 감정적으로 흔들려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프고 속상한 아빠의 마음보다 더 아프고 놀랐을 딸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빠의 역할임을 오늘 일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빨갛게 남은 딸아이의 영광의 상처(?)가 내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그네 혼자 탈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