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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13. 2023

"그냥 안아줘."

기분이 안 좋아 잠 못 드는 아이를 위한 처방

  요 며칠 딸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잠에 대해 마지막으로 걱정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질 때쯤 잊고 지냈던 잠자리의 사투가 다시금 떠올랐다. 나폴레옹에게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명언이 있다면, 우리 아이에게는 "내 사전에 통잠이란 없다."가 있을 정도로 신생아 때부터 통잠이란 걸 모르던 아이였다. 통잠을 자기 시작한 아이 덕분에 육아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수면에 있어서 신세계를 경험했었는데…. 


  어둠 속에서 밀려오는 갖은 생각들과 사투를 벌인 후 겨우 잠이 든 지 얼마나 되었을까. 곁에 있는 아이의 침대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이의 짜증스러운 발길질, 이어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도 잠꼬대를 많이 하는 편이니 오늘도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려 보았지만, 아이의 울음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는지 물어도 보고, 달래도 보고, 자다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더라도 곁에서 자는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그러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분이 안 좋아."


"왜 기분이 안 좋은데?"


"그냥 기분이 안 좋아."


  토닥거려도 흐느낌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시 자리에 누워 이 지옥 같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아이의 눈물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안아줬으면 좋겠어."


  안아달라는 아이의 말에 곁에 누워 꼭 끌어안았다. 아빠의 품을 파고드는 아이.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아이는 내 품에서 말없이 한참을 안겨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스스로 품에서 빠져나와 베개를 베고 웅크린 아이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이제 기분이 괜찮아졌어."


  언제 그랬냐는 듯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 잠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각, 아이의 숨소리, 부지런히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방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안아줬으면 좋겠어."


"이제 기분이 괜찮아졌어."


  아이와 말로 소통을 하기 전에는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비롯한 모든 것을 아이의 울음과 표정, 행동 등으로 눈치껏 파악해야 했었기에 하루빨리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둘이 말만 통하면 좀 더 마음을 잘 헤아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그토록 아이와 대화를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었는데, 정작 아이와 온갖 대화를 주고받는 지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잠이 못 들어 속상한 새벽 아이한테 필요한 건 그저 아빠가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뿐이었는데…. 해가 하면 갈수록 초보 아빠 티를 벗기는커녕 점점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소홀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부끄러워졌다.


  아직 4돌이 안 된 아이. 말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빠의 말보다는 따뜻한 표정과 품이 더 잘 마음에 와닿는 아이를 위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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