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첫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지난번 온라인 전집 대여 업체를 통해 한 달 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 전집을 빌려 함께 읽었는데, 그 여운이 오래 남았는지 자꾸만 다시 읽고 싶다고 졸라 급한 대로 당근마켓에서 '그림으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야기를 구입했다. 이제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한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이번에 집에 들인 '그림으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책이라 글밥이 많고 글자도 작아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빠의 몫이 되었다.
방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간략하게 간추린 책, 그리고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재미있게 묘사하다 보니 이야기 속에는 축약되어 있는 부분도 많고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호기심 마왕의 질문 본능이 발동하기 좋은 조건이다. 매일매일 읽어줄 이야기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랴, 아빠가 알고 있는 얄팍한 배경 지식을 뽐내랴 책을 한 번 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이와 함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살펴보면서 나도 책장 한편에 고이 모셔두었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꺼냈다. 읽어야 할 책이 책상에 하나둘씩 쌓여 곧 산을 이룰 기세이지만, 이번 기회에 꼭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아이와 함께 같은 주제의 책을 읽기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최적이라 생각하기에.
아이와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 것은 여러모로 가치로운 일이다. 먼저, 아이가 책을 읽을 때 옆에서 함께 나의 책을 읽어도 '딴짓'이라는 딱지를 뗄 수 있다.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있지만, 맥락을 같이하는 책. 아이가 책에 몰입할 때는 나도 독서에 몰입할 수 있고, 아이가 질문을 하면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 주면 된다. 혹시나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바로 찾아보고 알려주기도 쉽다. 궁금한 내용을 찾아본다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릴 필요가 줄어들기에 책 읽다가 엉뚱하게 샛길로 샐 염려가 줄어든다.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책을 더 깊이 있게 읽게 된다.
다음으로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에 대한 나름의 팩트 체크를 하면서 이야기를 읽어줄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만화 영화는 흥미를 위해 원전의 내용을 각색하거나, 지나치게 축약한 내용이 많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텍스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다면 부모도 아이도 왜곡된 내용을 그대로 사실인양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그런 면에서 아이와 같은 책이지만 깊이가 다른 책을 함께 읽으면 아이가 책에서 읽은 내용의 적절성 여부를 바로 확인하여 틀릴 경우 정정해 줄 수 있고,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때 바로 설명해 줄 수 있다.
또 아이가 한 주제의 책을 읽는 동안 함께 공통된 지식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눌 기회가 많다는 것은 아이와 함께 책 읽기의 좋은 점이다. 같은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아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의 상당 부분이 책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지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는 궁금증을 자극하고, 자꾸만 서로의 책에서 손을 떼기 어렵게 한다. 개인적으로 한 권의 책을 오래 붙들고 읽지 못하는 좋지 않은 습관을 갖고 있는데, 아이와 같은 주제의 책을 읽을 때는 혼자 읽을 때와 달리 끈기 있게 책을 붙들고 있게 된다. 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해 줘야 한다는 아빠로서의 책임감도 있겠지만, 아이와 함께 읽어 나가는 책은 혼자 읽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읽어야 할 책은 많지만, 다른 책들을 잠시 접어두고 아이와 함께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 것은 가치로운 일이다. 요즘 우리 아이의 관심사를 함께 공유함으로써 아이를 보다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세상의 이치를 함께 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