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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무너진 청사진, 다시 그린 용기

— 불안을 넘어선 용기 —

by 제이욥

박서윤 씨의 삶은 언제나 수천 장의 청사진과 수십 기가바이트의 도시 데이터 속에 있었다. 그는 서울 최고 건축 사무소의 젊은 도시 설계 전문가였다.


그의 손을 거친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들은 늘 미학적 완벽함과 기능적 효율성을 자랑했고, 그의 이름은 '미래 도시의 설계자'로 불렸다. 그는 사람들의 삶보다는, 완벽한 그리드 시스템과 조감도 속의 그림 같은 도시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에게 도시란 '정교한 시스템'이자 '통제 가능한 유기체'였다. 낡고 오래된 구역은 '비효율적인 공간'일 뿐이었다. 현장 답사에서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사무실에서 최신 지리 정보 시스템(GIS)과 인구 통계 자료를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마스터플랜을 만들어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는 그의 계획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그의 모토는 "오차는 곧 실패다"였다.


“이 신도시의 녹지 공간은 일조량과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 30%를 할당했습니다. 주민들의 동선 분석 결과, 상업 지구와의 접근성을 최적화하여 도보 5분 이내에 모든 편의 시설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는 발표에서 늘 단호하고 자신감 넘쳤다. 그의 설계는 언제나 완벽했고, 고객들은 그의 비전에 매료되었다. 전 세계 유명 건축 전문 매체들은 그의 작품을 앞다퉈 소개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도시 공학의 선구자', '스마트시티의 마스터'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존재했다. 아무리 화려한 신도시를 설계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어려웠다. 고도로 계산된 효율성,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조감도…


그것은 완벽했지만, 어딘가 차갑고 메말라 있었다. 낡은 시골집 마당에서 흙장난하며 마을 사람들과 웃고 떠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미 오래전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그는 늘 자신의 완벽주의 뒤에 숨어 있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밤잠을 설치며 불안에 떨었다.


"정말 이 모든 것이 도시 설계의 본질일까? 완벽하게 연출된 이 도시 속에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는 어디에 있지?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그는 종종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을 찾기 전에 다음 프로젝트의 복잡한 교통 시뮬레이션과 마감 기한이 그를 채찍질했다. 그의 연구실 한구석에는 덮개에 덮인, 그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던 낡은 나침반이 놓여 있었다. 나침반은 그에게 '정확성'이 아닌 '불안정한 미지'를 상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윤 씨에게 예상치 못한 비보가 전해졌다. 그가 수년간 공들여 설계한 대형 도심 공원에서 뜻밖의 대규모 지반 침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며칠 전부터 미세한 균열이 발견되었지만, 그의 시스템은 '안전 기준 통과'라는 데이터를 제시했고, 그는 그 데이터를 맹신했다. 하지만 대규모 폭우가 쏟아지자 지반은 무너져 내렸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언론은 그와 그의 설계에 비난을 쏟아부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분석하고 설계했는데! 이 지반은 수십 년간 안전하다고 검증받았던 곳이야!"


그는 경악했다. 그의 완벽한 청사진은 한순간에 찢어졌다. 모든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그는 회의실에서 수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의 화려한 도시 설계 인생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듯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손에는 남은 것이라곤 수많은 데이터와 함께, 공허함만이 가득한 머릿속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휴직계를 내고 무작정 고향 마을로 향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오래전 도시를 떠나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간 찾아뵙지 못했던 할아버지였다. 그의 손에는 찢긴 도시 계획서 한 장만이 들려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몹시 무거웠다.


도착한 시골 마을은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고요하고 푸근했다. 할아버지의 횟집은 아담하고 정겨웠다. 창밖으로는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부모님은 딸의 핼쑥해진 모습을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서윤아, 너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해졌니? 많이 힘들었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공원 사고라니, 이게 무슨 일이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말과 손길에 서윤 씨는 낯선 위로를 받았다. 굳이 자신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할아버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텃밭에서 갓 따온 채소들로 만든 투박한 반찬과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구수한 매운탕… 화려한 도시 레스토랑의 어떤 음식보다 더 진정성 있는 맛이었다. 그녀는 잃었던 입맛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을 한 숟가락 떴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살았음을 느꼈다.


그날부터 서윤 씨는 횟집 안에서만 지낼 수 없었다. TV를 켜도, 책을 읽어도 그의 마음은 온통 답답함으로 가득했다. 그의 감정은 억눌려진 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어슬렁거리다, 그는 횟집 뒤편의 낡은 어구 창고를 발견했다. 그가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낚시 도구를 정리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는 어릴 적, 이 창고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낡은 그물을 손질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화려한 도시 개발 기술은 없었지만, 직접 찢어진 그물을 꿰매고, 낚싯줄을 엮던 그 순간의 순수한 즐거움. 문득 잊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는 굳이 목적을 두지 않고, 그저 발길이 이끄는 대로 할아버지의 그물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의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낡은 그물을 손으로 일일이 꿰매는 일… 그는 최신 소재의 튼튼한 그물을 대량으로 구입하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그물은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찢어진 부분을 덧대고, 낡은 줄을 교체하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그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물건 수리를 넘어선 어떤 경건함을 느꼈다. 낡은 그물의 거친 촉감, 촘촘히 엮이는 낚싯줄의 팽팽함… 이 모든 것이 도시의 청사진 속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진짜 감각이었다. 그의 온몸의 세포들이 살아나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그물을 손질했다. 서툰 솜씨로 그물을 꿰매는 그에게 할아버지는 말했다.


“도시를 짓는 일이나, 이 그물을 꿰매는 일이나 다 똑같아.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도 언젠가는 낡고 찢기게 마련이지. 그때마다 버리고 새로 만들면 뭐 남는 게 있겠니? 낡아도 고쳐 쓰고, 부족해도 서로 도우면, 그게 진짜 튼튼한 거란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여.”


할아버지의 말은 서윤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화려한 청사진과 막연한 예측이 주는 찰나의 만족감 대신, 땀과 정성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주는 깊은 만족감. 그는 자신이 좇던 '완벽함'이 실제로는 너무나도 취약하고 고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 삶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다.


서윤은 그날부터 할아버지의 횟집 일에 온전히 몰두했다. 그는 더 이상 '도시 설계 분석'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낡은 그물을 꿰매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집중했다. 굳이 복잡한 데이터 분석 대신, 손으로 직접 낡은 어구들을 수리하고, 바다에서 갓 잡은 생선을 손질했다. 마을 어부들과 함께 바다에 나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다의 변화무쌍함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삶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배웠다.


한 달 후, 서윤의 휴직 기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횟집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화려한 여의도의 빌딩 숲 대신, 낡고 정겨운 시골 횟집이 그에게 진짜 세상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지혜와 마을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감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맞설 용기를 얻었다.


그는 도시로 돌아가기 전, 할아버지에게 직접 낡은 어구 창고를 리모델링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기존의 낡은 나무와 철근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주민들이 모여 그물을 수리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그의 '세련된' 아이디어에 의아해했다.


“서윤아, 그냥 이대로도 괜찮어. 사람들은 낡아도 정겹다고 다 좋아한다.”


하지만 서윤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이 공간의 가치는 변함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할아버지의 지혜를 배우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이 횟집도, 마을도 계속될 수 있죠.”


그녀의 노력 덕분에 횟집은 시골 마을의 작은 명소가 되었다. 낡은 어구 창고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지혜를 공유하는 따뜻한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도시 공학의 선구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잇는 공간의 장인'으로 불렸다. 그의 설계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추억과 온기를 담은 이야기가 되었다.


"가장 완벽하고 화려한 것만을 좇다 보면, 어느새 자네 마음의 용기는 메마르게 된단다. 때로는 모든 숫자의 흐름과 예측을 내려놓고, 투박한 손으로 땀 흘려 일하는 과정을 거쳐 보게나. 가장 평범하고 소박한 것 속에서, 자네가 잃어버렸던 진짜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불안을 넘어설 진정한 용기와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서윤 씨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그의 새로운 삶은 여전히 효율성을 추구했지만, 그 위에 사람들의 온기와 진심이 담긴, 살아있는 가치를 더했다.


그는 매일 아침 도시의 변화무쌍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기쁨을 얻었다. 무너진 청사진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용기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의 삶은 이제 '완벽한 통제'가 아니라, '불안을 넘어선 용기'를 따라 흘러갔다. 그는 마침내 진정한 도시 설계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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