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새벽, 도시의 벽을 넘다

믿음이 머무는 동네. 2장

by 제이욥


새벽이었다.


집 안은 깊고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부모님 방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숨소리는 일정했고, 규칙적이었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삐걱거릴까 두려워 손잡이를 세게 쥔 채 문을 아주 천천히 밀었다. 미닫이문이 조금씩 열릴 때마다 들려오는 미세한 소음에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방 밖으로 나온 그는 발끝으로 바닥을 걸었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걸음을 조심했다. 마룻바닥이 울릴까 무서웠다. 아버지와 엄마가 깰까 두려웠다. 아침이 되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이안의 빈방을 발견하겠지. 그는 부엌 테이블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갑자기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손끝이 떨리면서도, 그는 메모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짧게, 단순하게 적었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단 세 단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쓸 말이 없었다. 그 메모를 내려놓는 순간, 그의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건 이상한 감각이었다. 오히려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현관문 앞에서 그는 다시 멈춰 섰다. 손잡이를 잡은 채 한동안 문을 열지 못했다. 문을 여는 순간 되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문을 밀었다. 찬 새벽 공기가 방금 깨어난 사람처럼 몸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 냉기에 피부가 얼얼했지만, 그는 아무 표정 없이 그 감각을 받아들였다.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발을 내딛었다. 주변은 차갑고 어두웠다. 골목 어귀에 놓인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퍼지고 있었지만, 새벽의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했다. 그 길은 익숙했지만, 이상하게 낯설었다. 어제와 똑같은 길인데도, 그는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는 묻지 않았다. 왜 걷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답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도 답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걸음을 멈추었다. 그대로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게 원래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은 다시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그 감각을 그는 두려워했다.


‘왜 멈출 수가 없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는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꽉 쥐었지만 그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는 마침내 도시의 끝을 보았다. 루멘시티의 경계.


높은 회색 금속 벽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숨 쉬지 않는 벽이었다. 차갑고 무표정한 벽. 도시의 끝,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벽 앞에 멈춰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벽을 바라보았다. 돌아갈 수 있었다. 메모를 남긴 지금이라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갈 수도 있었다. 정말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왜 돌아가지 못할까.


그때, 그는 벽의 구석에서 작은 철문 하나를 발견했다. 녹슨 경첩이 달린 오래된 문. 누군가가 열어둔 채 잊고 간 문. 아니면,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문. 문은 아주 작고 어두웠다. 불길하거나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안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도시의 불빛이 멀리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따뜻한 빛은 아니었다. 그저 빛. 그 빛 아래에서 그는 살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는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금속의 차가움과 오래된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철문은 뒤에서 천천히 닫혀갔다.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도, 문은 스스로 움직이듯 닫혀갔다. 쇠붙이가 긁히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그리고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문이 닫힌 뒤, 이안은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등 뒤로는 차갑고 묵직한 금속 벽. 그 벽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선을 그은 듯 느껴졌다.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처음으로 도시 바깥의 풍경을 보았다.


길은 길 같지 않았다. 포장된 길 대신 울퉁불퉁한 흙바닥이 이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가늘게 흩어졌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바닥의 촉감도 달랐다. 평평하고 매끄러운 인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 자갈들 사이로 풀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고, 흙은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도시 안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흙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이안은 그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처음 딛는 땅이라는 감각.


그는 자신이 도시 안에서 만들어진 길이 아닌 땅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그는 멈출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그저 걸었다. 걷는다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주변 풍경은 낯설었다. 길가에는 돌담 같은 것도, 건물 같은 것도 없었다. 오직 흙과 풀, 그리고 갈라진 자갈길뿐이었다.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도시 안에서 익숙했던 전자음이나 엔진 소리 같은 것은 사라지고,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낯설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쪽에서 작은 카트를 끄는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낡은 수레를 밀며 천천히 흙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안은 그에게 다가갔다. 망설이다가 결국 작게 물었다.


“카르멘타운으로 가는 길…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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