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중심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용한 이 공간은 오래된 담장과 성당 벽면에 둘러싸인 작은 공터였다. 군데군데 깔린 자갈 위로는 잡초가 올라와 있었고, 햇살에 비쳐 바랜 석회벽과 갈라진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공터 한쪽에는 벽돌로 만든 낮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지만, 그것조차 오래되어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곳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장소라기보다는 마을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작은 빈 공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공터를 감싸는 공기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평온함을 품고 있었다.
이안은 발끝으로 자갈을 밟으며 천천히 그곳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성당에서 들려오던 종소리가 귀에서 잦아든 지금, 주변은 더 깊은 침묵 속에 잠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공터 한가운데 서 있는 작은 소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그곳에 오랫동안 서 있었던 사람처럼 조용한 모습이었다.
해진 회색 원피스를 입은 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 옷자락은 군데군데 닳아 있었고 소매는 손목을 덮을 정도로 길었지만, 그런 초라한 외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소녀의 얼굴은 따뜻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그 미소는 억지로 지은 것도, 인위적으로 꾸민 것도 아니었다. 그저 햇볕처럼 자연스럽고, 나무 그늘처럼 부드러운 미소였다.
소녀는 이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조금 갸웃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기는커녕 마치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한 발짝, 또 한 발짝 이안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려움이나 망설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낯선 이를 향해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그 모습은, 이안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자신이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시에서는 누구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고, 낯선 이를 향한 모든 태도는 경계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마리엘은 눈부신 햇살 속에서 묻듯 말했다.
“누구야?”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그 질문 속에는 경계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마을 어귀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에게 묻는 질문처럼 자연스러운 말투였다.
이안은 대답하지 못한 채, 자신의 앞에 멈춰선 그 소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낯선 마을, 낯선 공터, 낯선 아이.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낯설었던 것은 바로 그 아이가 지닌 미소였다. 그 미소는 이안이 기억할 수 없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기억이 무엇인지 전혀 떠올릴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리엘은 이안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치려 했지만, 소녀는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가볍게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너 몇 살이야?”
이안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대답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열네 살.”
그러자 마리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나도 열네 살인데!”
그녀는 혼자 신나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조금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반말해도 되겠다. 이상하게 높임말 쓰는 거 어색하거든.”
그녀는 자신만의 규칙이라도 있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하곤 가볍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안은 동갑이라는 사실이 무언가 허락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에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리엘. 넌?”
“…이안.”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마리엘은 대답을 듣자마자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이안? 특이한 이름이다. 신기하네.”
그녀는 그 말에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표정은 억지스러움이 없었다. 마치 진심으로 친구가 생겼다는 걸 기뻐하는 아이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