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야
믿음이 머무는 동네
신부님과 헤어진 이후로도 이안은 쉽게 성당 앞을 떠나지 못했다. 성당에서 나와서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햇살이 내려앉은 마당 위에서 가만히 멈춰 선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머무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성당 안에서 마주했던 그 이상한 감정이 몸 안에 잔류하고 있는 듯했고, 그 감정을 두고 떠나기라도 할까 두려운 사람처럼 그는 마당 끝자락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성당은 말이 없었고, 성당 바깥의 햇빛은 성당 안의 고요함과 전혀 다른 세상처럼 눈부셨지만, 그마저도 마음 깊은 곳에는 닿지 않았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지만, 그 길을 쉽게 향하지 못하는 어른거림 같은 것이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발끝만 바라보며 서 있던 이안의 앞에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왔다. 마리엘이었다. 그녀는 성당 앞 작은 벤치에 먼저 앉아 있다가, 이안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그를 향해 손짓했다.
“이안, 여기 앉아. 괜찮아.”
그 목소리는 강요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소한 권유도 아니었다. 이안은 순간 머뭇거렸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언의 마음을 그녀가 알아차린 것처럼 그 손짓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결국 그는 그녀가 앉아 있는 벤치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성당 문 앞을 떠나는 그 짧은 걸음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안은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벤치 위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엘은 성당 마당에 내리쬐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안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침묵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 침묵이 자신에게는 필요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 옆자리가 비어 있지 않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마리엘은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요구하지 않은 채 곁에 있어주고 있었다. 마치 그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녀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이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마당 위의 공기는 고요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안은 자신이 더 이상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는 말없이 마리엘 옆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순간, 그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여기에 같이 있어줘.’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벤치였다.
마리엘은 옆자리에 앉은 이안이 여전히 말이 없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너 루멘시티에서는 친구들 많이 만나?”
그녀의 질문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둔 질문인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수단처럼 가볍게 던져졌다.
하지만 이안은 그 질문이 너무 낯설게 들려서 잠시 멍해졌다. 루멘시티에서는 누구도 그런 질문을 먼저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란 항상 경쟁과 눈치를 통해 형성되었고, 먼저 누군가 다가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작게 대답했다.
“글쎄… 별로 없어.”
그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고, 그 말을 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그 사실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옆에서 들려온 마리엘의 대답은 더 어색한 미소를 짓게 했다.
“그럴 줄 알았어. 표정이 그런걸.”
장난스럽고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이안은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마리엘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 안에는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이 숨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리엘은 잠깐 그 말로 대화를 멈췄지만, 곧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번엔 더 가벼운 목소리였다.
“루멘시티는 어때? 거긴 뭐가 그렇게 번쩍거려?”
이안은 그 말에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웃긴 질문이었다. 그는 그 말을 정색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잠시 생각한 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높은 건물 많고… 빛나는 광고판들 있고… 밤에도 계속 불이 켜져 있어.”
그가 더 설명하려고 했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문장을 흘리듯 마무리했다. 그러자 마리엘은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밤에도 불이 안 꺼진다고?”
그 목소리에는 가짜 놀람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감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너무나 다른 곳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그 사실이 마냥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 말 뒤로 그녀는 잠시 시선을 돌려 자기 마을 쪽 골목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긴 다 꺼지는데…”
한참 골목을 바라보던 마리엘은 고개를 다시 돌리고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신에 찬 말투로 이안에게 말했다.
“근데 나는 여기가 좋아. 나는 밤에 불이 꺼지는 게 더 좋거든.”
그 말은 그저 자신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말한 것뿐이었지만, 이안은 그 순간 무언가 가슴 한가운데에 박히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살아온 도시는 밝았다. 어딜 가도 빛이 넘쳤고, 밤이 없는 도시라고 생각할 만큼 불빛으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마리엘은 빛이 없는 밤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은, 무언가를 비워낸 공간에 깃드는 평화를 소중히 여긴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안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동시에 그 말이 어쩐지 부럽게 들렸다.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조금씩 서로 다른 도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리엘은 자신이 사는 이 작은 마을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아는 그 풍경과 그 사람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전혀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는 당당하면서도 따뜻했다.
이안은 그런 마리엘을 바라보며, 자신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그 차이가 어쩐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신부님의 설교를 들을 때에는 머릿속에서 울리던 그 복잡한 말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리엘과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단순하고 선명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구나.’
그렇게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이안에게는 생애 처음으로 다가온 것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하느님보다 옆자리에 있는 마리엘이 훨씬 더 가깝고, 편안한 존재로 느껴졌다.
이안은 입을 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걸려 있던 질문이 계속 입술 끝에서 맴돌았다. 아까 성당 안에서부터 계속해서 가슴 어딘가를 누르고 있던 그 질문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마리엘에게 이 말을 꺼내도 괜찮은 걸까, 혹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떠올랐지만, 그럼에도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자신이 방금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질문을 던진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리엘… 넌 하느님이 무섭지 않아?”
그 말은 마치 목 안에 박혀 있던 돌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겨우 나온 말이었다. 그는 방금 꺼낸 자신의 질문이 너무 무거워서 마리엘이 답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녀라면 듣고도 피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말을 꺼낸 뒤에도 그는 두려움에 빠졌다. 자신이 그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지금 그 벤치 위에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무너질까 봐 걱정했다. 그는 그저 마리엘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어 시선을 피한 채 손끝을 바라보았다.
자기 안에 남아 있던 그 묵직한 의문이 너무 늦게, 너무 무겁게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걸 물었을까?’ 하고 속으로 자책하며 그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하지만 마리엘은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이안이 결국 이 질문을 꺼낼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더 설명해주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고, 당황해서 재빨리 답하려 하지도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답을 꺼내듯 조용하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무서울 이유가 없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듯 말하는 그 어조는 설명이라기보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사실을 솔직하게 전하는 사람이 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안은 그 목소리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던진 그 무겁고 답답한 질문을, 마리엘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넘긴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진심으로 되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답한 뒤에도 이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그저 괜찮다는 듯한 위로 같기도 하고, 대답은 여기까지라는 듯한 조용한 마침표 같기도 했다.
이안은 그녀의 그 태도에서 어떤 설명보다 더 큰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더 깊은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무서울 이유가 없다’는 그 짧은 말이, 오히려 자신을 더 무겁게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엘은 그 짧은 대답을 끝내고도 침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작은 숨을 들이쉬고, 마치 이안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말을 이어가 주겠다는 듯 부드럽게 말을 덧붙였다.
“하느님은 따뜻한 분이야. 그래서 무서울 일이 없어.”
그녀는 고개를 조금 기울인 채, 멀리 성당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처럼. 하느님을 설명한다기보다는, 마치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듯 담담했다.
그 말이 이안에게는 훨씬 더 낯설게 들렸다. 하느님을 따뜻하다고? 자신에게 하느님이란 낯선 존재였다.
거대한 도시 위에서 보이지 않게 내려다보는 감시자, 차갑고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마리엘은 그 존재를 ‘따뜻하다’고 말했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복잡한 비유도 없이 그저 당연한 사실처럼 그렇게 말했다. 마치 이안에게도 언젠가 느끼게 될 것이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