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

믿음이 머무는 동네

by 제이욥

이안은 카르멘타운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성당에서 들었던 신부님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부님이 한 말들이 특별히 어렵거나 길었던 것도 아닌데, 머릿속 어딘가에서 그 말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맴돌고 있었다. 신부님은 그저 ‘사랑 때문이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 간단한 한마디가 마치 가슴 깊숙한 곳 어딘가를 두드린 것처럼 묘한 울림을 남겼다.


그는 그것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고, 잊으려 하지도 않았다. 손끝에서부터 가슴으로 퍼지던 촛불의 온기와도 비슷한 그 울림을 그냥 붙잡고만 있고 싶었다. 침대에 앉아 가만히 벽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그게 뭐였을까. 왜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남아 있었던 걸까. 그는 알 수 없었다. 알지 못하는 울림은 답답했지만,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게 있다는 걸 그는 처음 알았다. 그저 마음 한가운데 어딘가가 따뜻하면서도 묵직하게 눌리는 기분. 그는 자신이 성당에서 뭔가를 두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무엇인지는 끝내 알지 못한 채 가만히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안은 자신이 성당 안에서 마리엘과 함께 앉아 있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작은 벤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옆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그 시간이,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마리엘이 특별히 무언가를 설명 해주거나 그에게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아니었는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 것 같았다.


이안은 성당 앞에서 마리엘이 내민 손을 붙잡았던 순간부터 다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왜 그 손을 붙잡았을까. 왜 자신은 그때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걸어갔을까. 그는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없었지만, 그저 그 손을 놓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릴 때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


마리엘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어떤 설명도 강요하지 않았었다. 그저 옆에 있어 주었다. 그래서일까. 이안은 그때 자신이 느꼈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그 조용한 안도감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마리엘이라는 친구가 자신에게 무언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던 끝에 이안은 카르멘타운에서 루멘시티로 돌아오기 직전, 성당 마당 앞에서 주저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던 그 순간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친구… 하자.’


당시의 자신은 마치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엄청난 일인 것처럼 느껴졌었고, 그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자신이 너무 어리석어 보일까 봐, 혹은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마리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그 대답이 얼마나 간단하고 빠르게 돌아왔는지, 그래서 자신이 더 놀라 당황했던 것도 함께 떠올랐다.

“응, 좋아.”


마리엘은 그 짧은 한 마디로 자신을 안심시켜주었고, 그때 자신은 어쩐지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온기를 느꼈었다. 이안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마리엘에게 그 말을 꺼냈던 이유조차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지금 떠올려보니 어쩐지 그 순간만큼은 부끄럽지 않았다. 그날의 그 대답이 지금까지도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자신의 웃음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날의 순간을 곱씹듯 되뇌었다. 마리엘이 건넨 그 단순하고도 당연한 대답은 자신이 살아오며 당연하다고 믿었던 관계의 방식을 처음부터 흔들어버린 것이었다.

무언가를 묻고, 설명하고, 이해받은 뒤에야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안에게 마리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가와준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이제야 그는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날 그 대화가 이안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친구하자’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마리엘이 그 말을 듣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은 채, 이유를 묻지 않은 채, “응”이라고 말해준 바로 그 순간 때문이었다.


그녀는 설명을 바라지 않았고, 의심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그 한마디로 이안에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때 그 한 마디로 낯설고 차갑기만 하던 카르멘타운은 더 이상 두려운 곳이 아니게 되었고, 이안은 그 사실을 새삼 떠올리며 베개 옆으로 손을 뻗었다.


마치 그 작은 손을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이라도 품은 듯, 손끝을 허공에 머뭇거리게 움직였다가 이내 조용히 손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왜 그때 웃었는지, 그리고 지금 왜 다시 그날을 떠올리며 웃게 되는지 그는 알 듯 말 듯한 마음에 잠겼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나눈’ 그 기억이, 여전히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에도 이안은 카르멘타운 성당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자신이 그곳을 다시 찾아가는 이유를 그는 분명히 설명할 수 없었다. 마리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날 성당 안에서 자신에게 들려왔던 그 알 수 없는 울림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그저 주말이 되면 자연스레 성당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었다.


이안은 늘 그렇듯 맨 뒷자리로 가 조용히 앉았고, 그 곁에 마리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촛불이 켜진 고요한 성당 안,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끝나고 종소리가 울렸다. 신부님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성당 안에 퍼지며 복음서 봉독이 시작되었다.

“마태오복음 17장 14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일어서며 성호를 그었다. 이안도 마리엘을 따라 몸을 일으켜 마리엘의 행동을 따라했다. 그의 귓가에 신부님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들었다.


“그들이 군중에게 가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봉독이 끝나자 성당 안은 다시 고요로 가라앉았다. 신부님은 복음서를 조용히 닫은 후, 한참을 묵상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듯한 그 어투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방금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를 고쳐줄 수 없었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말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나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신부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손끝을 가늘게 오므리며 사람들에게 보였다.


“이만큼 작은 씨앗. 어쩌면 우리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아주 작은 씨앗만 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요.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요.”

신부님의 시선이 성당 안을 천천히 훑었다. 이안은 그 눈빛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믿음이 크고 대단해야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적 있지요? 저도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잘해야 하느님이 들으실 것 같았고, 처음부터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만 성당에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괜찮다고. 처음부터 큰 나무가 될 필요는 없다고요.”


신부님은 잠시 웃었다. 그 표정은 따뜻했고, 아이들을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크기가 아닙니다. 씨앗은 크지 않지만 씨앗 안에는 이미 나무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을 심지 않으면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씨앗을 심으라고 하십니다. 네가 가진 아주 작은 물음, 네 마음 안에 생겨난 작은 질문, 혹은 아주 조그만 희망 하나. 그것을 하느님께 드리면 된다고 하십니다.”

신부님은 다시 이안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하느님, 정말 계신가요?’ 하고 물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 질문 하나가 바로 씨앗이고, 하느님은 그 작은 씨앗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순간 이안의 가슴 어디선가 아주 작은 울림이 일었다. 자신은 한 번도 그렇게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믿음이 없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지 않아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겁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시작입니다. 얘들아, 하느님은 너희가 완벽한 사람으로 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에요. 너희가 가진 그 작은 마음 하나, 그걸 하느님께 드리렴.”

성당 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꼭 움켜쥐었다. 자신의 마음 어딘가에 작은 씨앗 하나가 심겼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지만 느끼고 있었다. ‘하느님, 계신가요?’라는 질문 하나가 자신 안에서 조용히 움트고 있다는 것을. 미사가 끝나갈 무렵에도, 그는 그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며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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