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내 생애 첫 묵주

by 제이욥

미사가 끝나고 성당 안이 조용해지자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이안을 눈으로 찾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성당을 떠나는 가운데, 그 소년만은 자리에 남아 앉아 있었고, 신부님은 천천히 다가가 아이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


그의 그림자가 이안의 무릎 위로 드리우자, 이안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선 신부님의 얼굴은 다정했고, 입가에는 미묘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신부님은 손짓하지도 않고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부름처럼 느껴졌다. 이안은 몸을 일으켰고, 신부님은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린 끝에 천천히 성소 옆 조용한 벤치로 그를 데려갔다. 목소리는 작았고, 다정했으며, 자연스러웠다.


“이안, 미사 끝나고 잠깐만 이야기할 수 있겠니?”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로 햇빛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신부님은 한참을 기다렸다가 조용히 손을 펼쳐 보였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작은 나무 묵주 하나가 놓여 있었다. 투박한 나무 알이 빙 둘러 엮여 있었고, 그 끝에는 작은 십자가가 달려 있었다. 신부님은 그 묵주를 아이에게 내밀었다.

“이걸 너에게 주고 싶구나.”


이안은 묵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부님은 서두르지 않고, 그 손을 천천히 이안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따뜻한 손끝에서 알알이 얹혀지는 그 작은 묵주가, 소년의 손 안에서 조심스럽게 무게를 가졌다. 이안은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건네받는 것처럼 손끝으로 알을 쓸어내렸다.


“너도 기도할 수 있어.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 말은 아주 단순했지만, 이안의 가슴에는 무언가 묵직한 울림으로 남았다. 신부님은 그 아이가 묵주를 손에 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묵주의 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끝으로 작은 나무 알을 굴리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묵주는 단지 손에 들고만 있어도 괜찮아. 왜냐하면 이건 하느님을 기억하게 해주는 너만의 작은 시작이거든. 그런데 그 알 하나하나가 네 기도가 될 수도 있단다. 네가 하고 싶은 말,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묵주알을 하나씩 넘기며 천천히 하느님께 들려드리는 거야.”


이안은 그 말을 들으며 손에 쥔 묵주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신부님은 천천히 묵주알을 하나 굴리고 다시 내려놓았다.

“기도는 어려운 게 아니야. 꼭 큰 소리로 할 필요도 없어. 네 마음 안에서 들리는 소리도 기도가 될 수 있단다. 그리고 묵주는 그 마음을 천천히 흘러가게 도와주는 친구야.”

신부님은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머금고, 한참 동안 멈췄던 말을 다시 이었다.


“방법을 알려줄게. 어렵지 않단다. 묵주는 하느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기도 안에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잊지 않게 해주는 거야. 묵주알을 하나씩 넘기며 우리는 ‘성모송’을 바쳐. 들어본 적 있니?”


이안은 살짝 고개를 젓는다. 신부님은 그렇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조용히 읊기 시작했다.


“성모송은 이거야. 따라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들어보렴.”


신부님의 목소리는 노래처럼 흘렀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그 낯선 기도가 처음엔 멀게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신부님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오자 이안은 그 음절들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신부님은 기도를 마친 뒤 한참을 침묵하다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기도는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바치는 기도야. 하느님께 다가가는 가장 쉬운 길이기도 해. 우리가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듯, 마리아님 손을 잡고 하느님께 가는 거야. 그러니까 이안, 네가 묵주알을 넘길 때마다 이 기도를 천천히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렴.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돼.”

묵주알을 하나 넘길 때마다 천천히, 기도문을 기억하며 마음을 열면 된다고, 신부님은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설명은 더욱 부드럽고 따뜻했다.


“한 알은 주님의 기도를 하며 넘기고, 열 알은 성모송을 천천히 되뇌는 거란다. 천천히 숨 쉬듯이, 천천히. 너의 마음속 이야기를 하느님께 들려드리듯이.”

이안은 자신의 손 위에 있는 묵주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것이 복잡한 기도문이나 종교적인 형식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 본 어떤 낯선 친구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알 한 알 넘기면서 네 마음을 하느님께 보여드리렴. 걱정하지 마. 하느님께선 너의 말을 들으시니까. 그리고 네가 말하지 못하는 마음도 이미 알고 계시단다.”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묵주 하나는 겨자씨야. 손에 들고 있는 지금, 네 안에 그 씨앗이 심겼단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손 위에 묵주를 꼭 쥐어주었다. 그 조용한 손끝에서, 작은 나무 묵주는 이안에게 기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처음이자 가장 작은 시작이 되었다.


성당을 나서는 길, 이안은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묵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무 알들은 그의 손에 쥐어지기엔 너무 가볍고 작아서, 방금 전 신부님이 이것을 조심스럽게 건네줄 때 말한 그 ‘작은 시작’이란 말이 자꾸 떠올랐다.


손끝에서 나무알을 하나 굴리며, 그는 어설프게 입을 열어보려 했다. 신부님이 알려준 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되는 그 기도. 하지만 첫마디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입술 끝에서 맴돌다가 그대로 삼켜졌다.


그가 잠깐 멈춰 선 걸 알아챈 마리엘이 옆에서 묵주를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해볼 거야?”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애써 묵주알 하나를 넘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


그러나 그 다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힘없이 묵주알을 멈췄고, 손가락 사이에서 그 작은 알맹이를 쓸어내리듯 흘려보냈다. 묵주가 손안에서 허전하게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마리엘은 다그치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작게 말했다.


“할 수 있을 때 하면 돼. 신부님도 그랬잖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 말에 이안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강요도, 기다림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말이 더 마음에 박혔다.


이안은 다시 묵주를 내려다봤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데, 막상 그게 무엇인지 몰라 망설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주알을 넘기는 것 하나에 왜 이토록 주저하고 있는지,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손끝에서 묵주알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기도란 어쩌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 조용한 걸음 속에서 이안의 마음을 다시 붙잡고 있었다.


그는 결국 그 묵주를 꽉 쥔 채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걷고 있는 마리엘은 그걸 알고 있었는지, 더는 묻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짧은 침묵만이 남았다. 그 침묵 속에서 이안은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두려운 일인지 깨닫고 있었다. 손 안의 묵주는 가벼웠지만, 마음속에서는 그것을 들고 있는 것 자체가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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