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
믿음이 머무는 동네
며칠 동안 이안은 책상 서랍을 열지 않았다.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머니 속에서 묵주의 감촉을 한 번쯤 더 느껴보긴 했지만,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 작은 나무알들은 서랍 속에 숨겨졌다.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손이 가지 않았을 뿐인데, 서랍을 열고 꺼내는 그 단순한 행동이 왠지 두렵게 느껴졌다. ‘오늘은 그냥 지나가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날이 하루, 이틀, 그리고 더 길어졌다. 가끔은 마음 한구석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가기도 했지만, 곧이어 ‘내가 이걸 한다고 뭐가 바뀔까’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그 생각을 덮어버렸다.
성당에서 신부님이 전해준 그 따뜻한 말들, 마리엘이 묵주를 손에 쥐어주며 했던 웃음 섞인 응원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방 안은 조용했고, 묵주는 서랍 안에서 점점 더 먼 존재처럼 느껴졌다.
기도를 한다는 게 뭔지도 몰랐고, 그런 걸 시작하는 자신이 우스울 것 같았다. 자신은 아직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만이 그의 손끝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안은 별다른 이유 없이 조용히 몸을 일으켜 책상 앞으로 다가갔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서랍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무알이 엮인 묵주를 꺼냈다.
묵주는 차가웠고, 조용했다. 손안에 쥐어보니 그 작은 알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이안은 그 묵주를 손안에 꼭 쥔 채 책상 의자에 앉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묵주를 잡은 손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고, 그 작은 원형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동안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신부님의 그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 한마디에, 이안은 아주 작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입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한참 동안 손에 쥔 묵주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자신이 이걸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들킬까 두려운 사람처럼. 기도라는 것은, 그에게 여전히 너무 멀고 어려운 일이었다.
이안은 묵주를 쥔 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나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마치 비밀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몸을 움츠린 채 걸었다.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엄마는 조용히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수도꼭지 아래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고, 엄마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손끝의 물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안은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다시 거실로 발을 옮겼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아버지의 눈은 텅 빈 듯 화면 어딘가를 향해 멈춰 있었다. 그 모습 역시 이안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동생 에린의 방 앞에 멈춰 섰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틈 사이로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방 안에서는 휴대폰 화면 불빛이 작게 깜빡이고 있었고, 에린은 무선이어폰을 낀 채 침대 위에서 폰을 쥔 손을 가슴에 얹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얼굴은 화면 빛에 물들어 있었고, 이어폰 너머로 무엇을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안은 한동안 그 문틈 사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이렇게까지 가족들의 모습을 확인하러 다닐 필요가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묵주를 손에 쥔 채 이 집 안 어딘가에서 기도라는 것을 시도하는 자신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고, 그걸 들키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에 몰두해 있고, 모두가 각자의 세상에 갇혀 있는 그 공간 속에서 자신이 지금 시작하려는 아주 작은 행동은 마치 거대한 비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더욱 조용히 숨을 죽였고, 발소리조차 죽인 채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이안은 묵주를 손에 꼭 쥔 채 문을 닫았다.
방문이 완전히 닫히는 그 미세한 소리조차 어쩐지 들켜버릴 것만 같아 조심스레 밀었다. 등 뒤로 닫힌 문을 바라보며 그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방 안 공기는 낮에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어온 도시의 먼지와 밤공기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냄새는 그가 늘 익숙하게 맡아온 것이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를 켜지도 않고 불을 끄지도 않은 채, 그저 방 안의 어둠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손바닥 안의 묵주가 천천히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손안에 있는 이 작은 구슬들을 굴린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구슬이 하나하나 느껴졌지만, 그것들을 움직이는 것이 마치 커다란 문을 열어야 하는 것처럼 힘들었다. ‘내가 이걸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누가 들을 것도 아닌데,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자신이 이걸 굳이 해야 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그는 묵주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작은 구슬들을 손끝으로 하나하나 만지며, 멈춰 서 있었다.
이안을 붙잡고 있는 것은, 기도의 방법을 몰라서도 아니고, 묵주를 사용할 줄 몰라서도 아니었다. 그는 두려웠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아무도 몰라주는 작은 행동을 스스로 시작하려는 그 마음이, 어쩌면 그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묵주를 쥔 손을 가슴 위로 올렸다. 그 작은 구슬 하나하나가 심장 소리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누군가 듣고 있는 걸까.’ 그러나 입술은 굳게 닫힌 채, 묵주는 여전히 그의 손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 상태로 가만히, 오래도록 서 있었다.
결국 그는 천천히, 책상 의자에 앉았다. 무릎 위로 묵주를 올려두고 손끝으로 작은 구슬을 가만히 굴렸다. 어둠 속에서 묵주알이 손끝에서 미끄러지는 그 감각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는 더는 멈춰 있지 않았다. 입술을 조금 떨며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 말이 끝나자 방 안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고, 마치 누군가 들을까 봐 두려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의 목소리는 군데군데 끊어졌다. 신부님이 알려준 그대로 주님의 기도를 읊으려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문장이 입술에서 툭툭 끊어졌다.
그는 더듬더듬, 기억나는 대로 이어 나가려 애썼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묵주알을 넘기지 못한 채 멈춰버렸다. 손끝이 떨렸다. 왜 멈췄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외워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 말을 계속하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그는 자신이 입을 열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방 안의 공기에게 들켜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다시 손끝으로 묵주알만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기도는 멈췄지만 손끝의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손끝으로 작은 묵주알을 하나하나 세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 기도를 할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묵주를 놓지 않았다. 그게 그날 밤 이안이 할 수 있었던 전부였다.
어느 순간 그는 묵주알을 잡은 손을 무릎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아직 한 알도 넘기지 못한 채, 방 안의 공기는 이전과 다를 것 없이 조용했고, 묵주알 역시 움직임을 멈춘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도 이안은 손에서 묵주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 작은 원 안에서 구슬들이 서로 부딪혀 내는 가느다란 소리가, 묘하게도 그에게 멈출 이유가 아니라 계속 붙잡아야 할 이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걸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되는 걸까.’
그는 묵주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말하지 못한 기도가, 기도일 수 있을까. 중얼거리지 못한 성모송이 기도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입을 열지 못해도, 무언가 마음 안에서 멈추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손끝으로 이어진 그 작은 원이, 자신에게서 어딘가로 연결된 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그냥 그렇게, 묵주를 손에 쥔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도를 이어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어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에 스스로를 붙잡은 채. 그렇게 한참을 머문 끝에, 이안은 묵주를 손에 쥔 채로 아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기도인지 아닌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들리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기분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방 안의 풍경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손안에 쥐어진 묵주알은 그에게 어쩐지 새로운 감각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묵주를 조심히 쥔 손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한 알 한 알 넘기지 못한 그 작은 알맹이들은, 마치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안은 아직 그 기다림에 답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방 안은 여전히 고요했고, 문틈으로 새어드는 거실의 불빛조차 그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묵주를 손에 쥔 채 그는 작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자신에게도 들릴까 말까 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님의 기도…”
그러나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는 입을 닫았다.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입술 끝에서 떠오른 것은,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묵주를 바라보다, 아주 조심스럽게 알 하나를 손끝으로 넘겼다. 아무런 기도도 없는 그 움직임이, 그에게는 묘하게 위태로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행동이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그 작은 구슬의 감촉이, 마치 자신이 아직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그 작은 움직임 하나를 끝낸 후에도 한참 동안 더 묵주를 손에 쥔 채,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손끝에서 묵주의 감촉을 느끼며 한참을 앉아 있던 이안은, 결국 아주 작은 숨을 들이쉬었다. 두 번째 알을 넘길 수는 없었다.
아니, 넘기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기도를 외울 줄 아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을 빌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기에, 그의 손끝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에서 묵주를 내려놓았다. 구슬이 손바닥을 떠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는 이상하게 아쉬움을 느꼈다. 묵주가 책상 위에 내려앉자 방 안의 공기는 다시 차갑게 느껴졌다.
이안은 그저 바라보았다. 자신을 기다려주는 듯한 그 작은 묵주를. 그러나 그 기대에 대답할 수 없는 자신을 더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자리에 누웠다.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손끝에 남아 있던 그 작은 감각은, 밤새도록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