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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AST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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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Nov 08. 2020

술이 나에게 미친영향. C2H5OH, 알콜 중독

우울증과 공황장애

저는 술을 아주 싫어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술을 매일 같이 마시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싫습니다.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며 배척하면서, 술에는 연예인 광고를 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알코올에 중증으로 중독된 아버지 밑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괴로워하며 지내야 했고, 가정폭력과 성추행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친부에게서요.

어디 가서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던 행동들은 저에게 숨기고 싶은 알코올 중독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 친척들도 아버지의 실업 사실과 알코올 중독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어머니가 철저하게 이러한 사실을 숨기셨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그래도 가장 때문에, 체면을 상하게 해선 안 되며, 이 모든 것이 본인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생긴 업보라고 믿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피해자인 어머니도 저에겐 가해가자 되었습니다.


지금은 술을 드시지 않습니다. 한평생 건강검진 같은 걸 받지 않으시다가 참다 참다 못 참은 어머니께서 '당신은 늙어서까지 나를 한평생 고생만 시킬 셈이냐'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꼬장을 부려도 안주 차려드리고 수발이란 수발은 다 들어주셨는데 이런 반항적인 멘트에 조금 반성 중이신가 봅니다. 각종 성인병이란 성인병은 다 진단받으시고 술을 뚝 끊으셨습니다. 여기에서 또 배신감을 느꼈는데요.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면 진작 좀 할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가엾습니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고요. 이 세상 누가 온종일 제정신이 없는 상태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TV만 보면서 살고 싶겠습니까. 그렇지만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술이란 술은 다 마셔댔으니 부럽기도 합니다. 밑에 처자식 달아놓고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배짱이 부럽습니다


알코올에 의존성을 보이는 유전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알코올은 대를 걸러서 유전된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에 피해를 받은 자녀 세대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지만, 그 자녀의 자녀 세대, 즉 손자 손녀들은 알코올 중독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제가 자녀를 낳고 싶지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됩니다.

우울증 환자의 알콜 의존도는 높은 편입니다. 진료를 받으러 갔던 병원마다 증세가 심각하고, 오래되었는데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에 내심 놀라는 눈치이십니다. 아직 술맛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술자리를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는데, 그때 마다 느끼는 것이 '이걸 이 돈 주고 사서 먹어야 되나?'라는 생각입니다. 이 액체류가 사람을 얼마나 망치는지 인생의 절반을 넘는 시간 동안 경험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달달한 자몽 맥주나 짭조름한 과자와 맥주를 마시는 날이 있기도 합니다. 술기운에 잠들고 싶은 날이 있기도 하고요. 맥주병 디자인이 너무 예쁘니 마셔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알딸딸함이 제 인생을 얼마나 망쳐왔는지 생각해보고, 그만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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