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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Jan 19. 2021

파도빛 신발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과거 8

바닷가에서 신발을 잃어버렸네

애써 울음을 참아보려 하는 아이 

엄마는 모래사장을 실컷 헤매다 

문득 파도가 치는 바다 쪽을 돌아보았지 

어쩌면 바다로 떠내려 갔는지 

어쩌면 바다로 떠내려 갔는지 몰라 

파도는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잔뜩 거품을 물고 고함을 지르는데 

아이는 이윽고 울음을 터뜨리네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는 어깨를

으쓱으쓱 

어쩌면 바다가 가져갔는지 

어쩌면 바다가 가져갔는지 몰라


아침(achime)-파도색 신발


때는 10살의 여름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항구로 엄마랑 같이 놀러 다녀왔다. 볼일이 있어서 간 건 아니었고, 내가 바닷가에 가고 싶다고 졸라서 갔었다. 나는 바닷가에 들어가서 시원하게 놀고 싶었지만, 엄마 혼자서는 아마 힘드셨을 거다. 그래서 몽돌까지는 아닌 조금 뾰족한 돌 사이를 신발을 벗고 걷는 거까지만 허락해주셨다.

해변가에 신발을 벗고, 나는 아직까지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돌 위에 신발을 올려뒀다. 나중에 돌아왔을 때 내 신발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화나 티브이에서 놓여 있는 신발을 봤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그런 걸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내 신발을 올려두고 해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다. 그리고 내 신발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어린 나에게 신발은 정말 귀중한 것이었다. 옷은 물려받아도 신발은 물려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신발을 자주 사주지 못하셨고, 신발이 다 닳아야 새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신발은 온전히 내 거였기 때문에 정말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신발이 없어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나를 혼내셨다. 신발을 챙기지 않았다고 말이다. 나는 더 울었다. 신발은 정말 귀중한 물건인데, 나는 그 신발이 없으면 신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맨발로 다녀야만 한다는 생각에 더 서럽게 울었다. 누군가 내 신발을 훔쳐간 게 분명하다고, 나쁜 사람이 내 신발을 훔쳐 갔다며 울었다.


 엄마는 맨발의 나를 데리고 뜨거운 아스팔트를 밟아 집까지 걸어가게 했다. 집까지의 거리는 4킬로미터였다. 버스를 타면 되는데, 택시를 타면 되는데, 엄마는 울고 있는 맨발의 나를 아스팔트 위로 걷도록 했다. 


그렇게 집으로 오고 나서, 맨발로 딱딱한 바닥을 걸어 다닌 나는 몸살이 나서 이틀을 앓아누웠다. 몸살이 낫고 난 뒤, 내 몸에 다른 이상이 생겼다. 발바닥에 살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살이 갈라졌다. 발바닥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간지러웠고,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어서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습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습진 때문에 고등학생까지 고생을 했다. 계속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었다. 그래도 겨울이면 발바닥이 갈라져 피가 흘러나왔고, 나는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신발을 들고 가기만 했었더라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였다. 나 자신이 정말 싫었고, 발은 너무 간지러웠다. 발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습진은 10여 년 동안 날 괴롭히고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연스럽게 나아졌지만, 아직도 주기적으로 발바닥에 껍질이 벗겨지고 있다.


얼마 전에 엄마랑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습진을 앓았던 이야기를 하게 됐다. 버스를 타면 되는데, 새로 사준 신발을 잃어버린 내가 미워서 맨발로 땅을 걷게 했다고 하셨다. 신발을 새로 사줄 수 없기 때문에 속상해서 그랬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아이의 신발을 누가 훔쳐갔겠는가 싶다. 아마 파도에 휩쓸려 바다 저편으로 사라진 게 아닐까 싶다. 파도가 내 신발을 가지고 갔고, 내 삶의 질 또한 떠내려갔다.


이제 내 발은 자라지 않기 때문에, 작아지고 낡은 신발을 신을 일도 없고, 일부러 큰 신발을 사서 신을 일도 없다. 습진도 다 나았고 내 발은 더 이상 간지럽지 않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신발에 집착을 한다.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싶어 하고, 의복 중에서도 신발만큼은 주기적으로 구매한다. 그래 봤자 운동화 두 켤레가 전부이지만, 가족들 생일에도 항상 신발을 선물했다. 남자 친구가 첫 월급을 받았을 때도 신발을 선물해달라고 했다.


요즘도 발이 간지러운 꿈을 자주 꾼다. 내 인생은 악몽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악몽 사이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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