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라서 불행한 걸까?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과거6

by 박모씨

내가 여자라서 들었던 차별적인 발언들이 있다. 사람의 성별이 두 가지로 나뉘어 있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임신을 하고 육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정말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나는 많은 차별을 당해야만 했다.


나에게 할 수 없다, 너 때문이다, 안된다 이야기한 것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나 싶을 때가 있다. 내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지 않은데도 이런 경험들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차별을 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건 다름 아닌 여성인 모친이었다. 엄마는 결혼을 하고 팔자가 꼬였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실제로 팔자가 꼬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그 하소연을 나에게 했다. 지금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를 본인은 썩 기억을 못 하고 계신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더군다나 우리 엄마 나이 때에는 전부 어렸을 때 결혼을 했으니까,라고 생각하기에는 트라우마가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로 남을 만큼 나에겐 큰 충격으로 남은 말들이다.

여자는 그렇게 크게 잘날 필요가 없다.

적당히 살다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된다.

팔자를 피려면 부자 남자를 만나야 한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너희는 내 딸이 아니다.

호주는 아빠라 너희는 내 딸이 아니다. 아빠 딸이다.

아빠를 닮아서 별로다.

너희는 나처럼 살면 안 된다.

여자라 어차피 돈을 못 벌거다.

저 집은 아들이 둘이라 너무 든든하겠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 들은 말들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엄마도 힘들었으니 했을 말들이지만, 나는 아직도 곪은 부위가 낫지 않았다.


이런 차별들은 직장을 구했을 때도 이어졌다. 가족회사라 와이프가 사장이랑 같이 일을 하는 곳이었는데도, 나에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지금 직장도 나에게 계속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자라서 남편 직장에 따라가야 하지 않겠느냐. 여자라서 아이를 낳을 텐데 육아휴직은 잘 쓸 수 있는 곳이라 다행이다.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싶은데, 남들이 만든 내 인생 계획에 당연하게 직업을 포기하고 적당히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포함되어 있다. 남들이 만든 거라 나랑은 크게 상관없는 것들이라 치부하고 말면 그만이겠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전에 만나던 애인은 나랑 같은 직업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괜찮은 집에서 잘 교육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온 남자였고, 내가 처음으로 '엄마 아빠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고 이야기했을 때 어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반색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전업주부가 되어 그와 나의 자녀를 보살펴 주는 역할을 담당하길 바랐다. 자기는 능력이 있으니 돈도 많이 벌어올 수 있다고 자부했다. 일종의 자신감이었을 텐데, 나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도 위태로운데 한 생명을 낳아 키우라니,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내 몸에 생기는 문제인데, 그 사람은 너무나 쉽게 아이는 낳아서 키우면 된다고 하고 말았다.


내가 만약 남자여서 저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까? 너는 여자이니까 이러해야 해! 이런 건 하지 말아야 해! 와 같은 말을 덜 들었으면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아이를 임신해서 낳아야 하는 몸이 아니었다면 내가 받을 중압감이 덜해졌을까?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에게 만족해야 증세가 나아질 텐데, 좋은 남자를 만나야만 인생이 괜찮아질 거라고 믿는 부모님을 보면서 인류애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 하나로는, 내가 여자라서 그들에게 뭔가가 모자라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남자) 찾는 것 같아 밉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 마냥 부정적이진 않다. 내 인생을 함께 걸어 나갈 사람을 선택하고, 가정을 꾸려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 대상이 될 거 같지는 않다.


나는 그냥 사람이다. 그냥 날 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