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씨 Apr 18. 2021

오늘 먹을 아메리카노를 미루지 말자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 일지

바람이 많이 불고 흐린 날씨가 계속됐다. 4월이 찾아온 것이 무색하게도 날씨는 쌀쌀했다. 내 우울증도 심해졌다. 약을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날과 좋지 않은 날들이 순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많이 심했다. 자살 기도를 했고 병원에선 입원을 권유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신변 정리를 마쳤지만 나의 죽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한 닷새간의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어쨌든 나는 살아남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출근을 하고, 일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맑은 주말이 찾아왔다. 지지부진했던 일주일 동안 하지 못했던 빨래도 했고, 정신과에 내원해서 더 이상의 자살기도는 없었으며 할 일을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고 이야기도 했고, 남자 친구와 처음 데이트를 했던 선릉에 가서 다시 함께 산책도 했다. 그리고 햇빛을 쬐며 움직여 주는 게 좋으니까, 만보계 어플을 핸드폰에 깔고 한참을 혼자 돌아다녔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다가, 문득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었다. 마침 근처에 좋아하는 커피집이 있었고, 그 앞을 일부러 지나가며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말지 고민했다.


주말이어서 굳이 커피를 마셔가며 정신을 차릴 필요도 없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지금 당장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니까, 돈 쓰는 것도 아까웠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페에서 집까지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번째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나는 남자 친구와 통화를 했다. 지금 어디야.  하고 있어.라는 물음에 혼자 산책을 나왔다고, 커피집 앞에서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다 되돌아왔다고 했다. 남자 친구는 ‘이왕 나갔는데 마셔. 거기 커피 좋아하잖아.’라고 했다. 나는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을 뒤로하고 다시 카페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렇게 3,800원과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을 들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목을 타고  안으로 들어오는 커피 향이 향긋했다. 시원하게 뱃속까지 음료가 내려가는 느낌도 좋았다. 맑은 하늘도 다시 보고, 횡단보도 옆에 활짝  꽃잔디도 다시 봤다. 일주일 전만 해도 죽고 싶어 허우적댔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것들을 참아가며 지냈다. 돈 쓰는 게 싫고 아까워서,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까워서 참았다. 아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참는 내가 싫었고, 비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참 남들과 비교를 많이 했던 학생 때는 그 사실들이 나를 괴롭혔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줄어들었다. 돈을 벌면서 알뜰하게 생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괜찮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깨달았다. 그런데도 나는 많이 참았나 보다. 참았던 것들을 생각해봤다. 입고 싶었던 원피스를 참았고(일 할 때 치마를 입진 않으니까),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참았고(안 먹어도 살 수 있으니까), 새 운동화를 참았고(신을 수 있는 신발이 하나는 있으니까), 향이 좋았던 향수를 참았다.(향수 없이도 살 수 있으니까.)


고작 삼천팔백 원에 여태까지 죽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좋은 기분이 깃들었다.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 하며 좋아하다가 삼천팔백 원에 좋은 기분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 친구의 권유를 듣고서야 결정을 내렸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서 살이 36킬로 까지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도 돈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하고 싶은걸 해보겠다며 귀를 뚫었다. 사실 귀걸이나 액세서리는 사치품이라  일이 없는 물건이었다. 정말 큰 결정 내린 거라며 혼자 칭찬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나의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금전적인 부족과 가족 간의 감정적인 부족 때문이다. 이제 성인이 되어 금전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고 여겼는데, 아메리카노 한 잔을 못 사 먹는 나는 여전히 돈에 얽매여 있었나 보다.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가고 견뎌가며 버틸 필요가 없었다.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돈에 대한 슬픔을 털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먹을 아메리카노를 참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은 걸 해보기로 했다. 살아남았는데, 이왕 살아남은 거 기분 좋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가보고 싶었던 꽃집에 가서 꽃꽂이 수업을 듣고 왔다. 써보고 싶었던 뜨개질 실을 주문했다. 걱정을 시켜 미안한 친구도 만나고 왔다. 예쁘다고 생각한 귀걸이도 사봤다. 이게 행복인가? 긴가민가 하지만, 뭔갈 한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만족하는 곳에서 오는 것인데,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부터 연습해야만 하지 않을까.  


아마도 여태껏 살아온 흐름 때문에 이 결심은 흔들릴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나는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흔들릴 때마다 주말의 향긋한 아메리카노를 생각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견디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