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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May 28. 2021

나는 오늘도 달린다.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 일지

Exercise is relatively safe and has less negative side effects than antidepressants. Obviously, exercise has also many beneficial effects on physical health, and is expected to have additional advantages in depressed patients who suffer from a combination of mental and physical problems

운동은 항우울제보다 대체적으로 안전하며 부작용이 적다. 그리고 정신적 문제와 신체적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는 환자들에게 있어서 신체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Effect of running therapy on depression (EFFORT-D). Design of a randomised controlled trial in adult patients-2012, Frank R Kruisdijk


 사실 우울증을 생각하면 너무 우울해서 나락으로 빠져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짜 중증의 우울증이라고 내심 깨달았을 땐,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깜깜한 상자 안에 내가 갇혀있는 기분이었고, 차라리 아무 기분도 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까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무언가 먹고 싶지도 않았고, 무언가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재작년, 그러니까 2년 전 여름부터다.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살이 급격하게 빠졌고, 누가 봐도 건강상태가 나 빠보였다. 내 키 158cm에 몸무게는 38kg이었다. 그러고 약에 적응이 되면서 점점 살이 쪘다. 나는 살찌는 게 싫었다. 말라서 맞는 옷이 없는 내 몸이 좋았다. 한평생 말라보는 게 꿈이었다. 통통하다며 언니 옷이 맞지 않는다고 엄마가 극도로 싫어하셨다. (나는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커터칼로 배를 도려내는 꿈을 꾼다.) 그런데 드디어 마른 몸을 가지게 되었다!


이왕 빠진 살인데, 살이 쪄버리면 내가 너무 한심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살이 덜 찌지 않을까, 생각했다.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아주 못했다. 하도 못한다 못한다 소리를 들어서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움직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맨몸으로 할 수 있는 달리기였다.


매일마다 3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폐부가 찢어질 것 같을 때쯤에 3km가 끝이 났는데, 그러고 나서 목에서 느껴지는 피비린내가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줬다. 논문이나 신문 기사에서 처럼 유산소 운동을 통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냥 내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숨 쉬면서 살고 있구나, 이렇게 힘들어도 나는 죽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는데, 숨이 벅차게 달리는 순간에는 내가 아직 살아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받았다. 아무리 힘들고 벅차도 나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송장이었던 내가 달리는 순간만큼은 숨 쉬며 살아있는 존재였다.


열심히 뛰고 나면 허기져서 밥도 잘 챙겨 먹게 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뛰면서 다소 규칙적인 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살도 붙었다. 살이 붙으면서 그 모습이 마냥 싫지도 않았다. 이게 맞는 거겠지, 싶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소모임에도 들었고,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런 와중에 지금의 남자 친구와도 만나게 되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내가 좀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성취감도 있었고, 자신감도 붙은 것이다. 내가 매일 폐가 찢어지도록 달릴 수도 있는데, 다른 것 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날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오작교도 되어준 달리기인데, 입사 후에는 달리기를 시들시들하게 했다. 일을 하면서 피곤하기도 했고, 내 건강이 정말 많이 괜찮아서 굳이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그런데 이번 봄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약에 취해서 내가 살아있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뛰니 1km만 뛰어도 숨이 벅찼다. 발목도 아팠다. 살이 2년 사이에 10kg이 쪘고,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폐부에 차가운 아침 공기가 들어차면서 따가웠고, 내가 아직 죽은 몸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그래도 2주 정도 1,2km씩 달리고 나니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하루가 활기차지는 것을 느꼈다. 계속 달려야 하는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선물로 받았던 샤오미 미 밴드를 꺼내서 손목에 찼다. 오늘은 뛸 때 신을 운동화를 하나 주문하려고 한다. 날 위해 운동하고, 날 위해 소비를 한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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