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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씨 Feb 13. 2021

명절 견디기

우울증 공황장애 환자의 치료일지

갖은 핑계를 대며 집에 방문하지 않은지 3개월 차, 올 것이 왔다. 명절이 다가왔다. 명절에는 그래도 집에 가는 편이라서, 식구들은 날 보고 싶어 하니까, 집에 갔다. 최대한 늦장을 부려 출발하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는 편을 선택해서 기차표를 예매했다.


설날 전 주말에 병원에 다녀왔다. 회사에서 일이 바빴었는데, 바쁜 일이 한 번 가시고 나니 얼굴이며 목소리며 편해진 거 같다고 해주셨다. 약을 3주 치 받아오면서 명절에 집에 가는 게 두렵다고 했다. 매번 마음을 비우고 기대 없이 가는데도 힘들다고 말했다. 집에서 탈출해오면 나아지지 않느냐고, 최대한 짧게 머무르다 오시라고 하셨다.


그렇게 연휴 첫날, 약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저번 추석 때 내 가방을 뒤지다가 취침 전에 먹어라고 표시된 수면제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셨기 때문에, 이번엔 항우울제를 전부 까서 약통에 영양제와 함께 섞어 들고 갔다. 약봉투를 뜯으면서도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 식구들은 나를 반겨줬고, 그들은 나에게 다음을 말했다.


1. 아빠는 내 차를 달라고 했다.

이로써 아빠가 내 차를 내놓으라고 말한 지다 다섯 번은 넘어갔다. 내 차 계약할 때 한 번, 새해에 전화해서도 한 번, 설날에 집에 가니 한 번 더 이야기했다. 5년쯤 지나면 돈 좀 모을 테니 차 너는 더 좋은 걸로 바꾸고, 지금 차는 아빠한테 달라고 했다.


우리 집은 집을 살 능력도, 13년 된 아빠의 차를 바꿀 능력도 없다. 그래서 도저히 농으로 하는 말이려니 넘길 수 없었다. 할부는 언제 끝나냐, 할부 끝나고 조금만 더 타다가 '달라'라고 3일 내내 이야기했다.


2. 엄마는 회사 비품을 보내라고 했다.

회사에서 이런 거 이런 거 쓰지 않느냐고, 다음에 들고 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보내달라고 했다. 심지어 종이에 메모를 해서 나에게 보여주셨다. 회사에서 쓰는 것 중에 여기에 있는 것이 있느냐고, 집에다 좀 보내달라고 했다.


회사 물건은 회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3.  카드가 있었으면 외식을 했을 거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외가 친척들이랑 같이 잠시 외출을 하고 오셨다. 집에 돌아온 아빠가 한 말이 가관이었다. 내 카드가 있었으면 외가 식구들 한테 밥이라도 한 끼 샀을 텐데.라고 하셨다.


일전에 엄마가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내 카드를 들고 갔었다. 그래서 카드가 엄마한테 있었는데, 아빠는 엄마가 외출하면서 받아뒀던 내 카드를 안 들고 나왔다며 한마디 했다.


엄마 임플란트 돈을 내라고 했던 것도 나는 싫었다. 다른 효도가 따로 없다며, 언니는 벌써 돈을 이만큼 보탰으니 너도 보태라고 했다. 실업 급여로 한 달 월세 내는 거 만으로도 벅찰 텐데, 집에는 돈 제대로 버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카드를 보냈다. 할부를 해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기어코 110만 원을 일시불로 긁었다. 나는 덕분에 한 달 동안 저금 한 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받아간 내 카드가 있었으면 친척들한테 밥을 사줬을 거라고 했다.


4. 집에 청소기가 없다고 했다.

요즘은 몸이 안 좋은데, 집에 있던 청소기가 고장 나서 버렸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했다. 너무도 내 입에서 '내가 사줄게'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거 같았다.


5. 엄마는 기어코  체크카드를 들고 갔다.

엄마가 이걸 좀 써줘야 너 연말 정산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너 좋아라고 하는 거니까 안 쓰는 거면 엄마가 가지고 있겠다고 했다. 참고로 내가 처음 체크카드를 드렸을 때, 이건 체크 카드고 돈을 넣어서 쓰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엄마는 돈을 넣지 않았고, 내가 처음에 용돈으로 넣었던 30만 원을 다 쓰고 나서도 돈이 없다는 문자가 계속 오기만 했다.


6. 아빠는 자기도 카드를 달라고 했다.

본인 카드는 없느냐고, 나한테도 카드 하나 달라고 했다.


7. 엄마와 언니는  물건들을 뒤졌다.

내가 보는 눈앞에서 내 지갑을 열더니 안에 영수증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병원 영수증을 항상 챙겨 오는데, 집에 오기 전에 영수증을 한 번 정리했다. 다행이었다.


8. 언니는  카카오톡을 뒤져봤다.

언니가 내 아이패드를 달라고 했고, 나는 빌려줬다. 언니가 사진부터 카톡까지 싹 훑어보고 이건 뭐냐 저건 뭐냐 했다.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본가에서 되돌아오는 길, 집에 도착해서 (이제는 부모님 집은 부모님 집이고, 내 집은 내 집이다.) 방 문을 여는데 눈물 두어 방울이 떨어졌다.

항상 집에 갈 땐 마음을 비우고 가는 것 같은데, 덜 비워진 마음이 상처를 받았나 보다. 덜 비워진 마음이 잔뜩 무거워졌나 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 법인데 아직까지 나는 그 정도의 득도를 하지 못했나 보다.


아픈 환자는 나니까, 하나하나 스트레스받고 답답해하고 가슴 아파하는 내가 잘못된 거겠지, 내가 평화로우면 모든 게 해결되겠지? 문고리를 돌리고 문지방을 넘어서면서 명절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괴롭힌 모든 것을 문 바깥에 놓아보려고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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