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씨 Oct 14. 2024

결혼식을 안 하면 안 될까요?

아니 연락 안 한지 10년쯤 됐는데 대뜸 잘 지내냐고 물어봤다니까? 다른데 물어보니 결혼한다고 청첩장 돌리는 거래. 무례하게 싸가지없어


최근에 자주 듣는 불평불만이었다. 친구들은 연락이 소원했던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돈 내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했고,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는 날이면 기차표값이 아깝고 주말에 늦잠을 못 잔다며 투덜거렸다.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대뜸 결혼한다고 하면, 예의 없게 평생 동안 내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어놓고선 결혼한다고 돈을 뜯어내려 한다며 사람들은 짜증을 듬뿍 부렸다.

가정을 꾸리겠다 마음먹은 친구들의 말도 충격적이었다. 결혼식장을 잡으려고 했는데 1년 반 전에 예약이 끝났다더라, 요즘 서울에서 결혼식을 하려면 식권을 기본 200장 이상은 사야 하는데 그게 가격이 1,600만 원쯤 된다.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하는데 기본 400 이상은 든다. 집 인테리어 최소한으로 했지만 평당 700이 들었다.


다들 먹고사는 것은 고만고만할 텐데, '감당이 되는 거야?' 하고 물어보니 요즘은 엄마 아빠 돈 없으면 안 된다고들도 했다. 참고로 이건 양가 부모님이 어느 정도 합의가 됐을 때 이야기지, 어른들끼리 이거하고 싶고, 저거 해야 하고 이야기가 틀어지면 친구들은 말 그대로 머리카락이 쑥쑥 빠진 채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피골이 상접한 채로 나에게는 내년이면 가격이 더 오를 테니 일찍 준비하라고 충고까지 해줬다. 나는 그저 입을 쩍 벌리고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들 이왕 결혼하기로 한 거, 으리으리한 예식장을 빌려 사람들 배불리 먹이고, 내 자식이 이 힘든 세상에서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결혼식을 한다며 부모님이 사회생활 하시면서 뿌려놓은 각종 경조사비를 거두는 일종의 "수금쇼"를 한다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에는 "결혼"이 아닌 "결혼식"을 하기 위한 촘촘한 스케줄표가 존재했고, 어떻게 해야 합리적인 가격으로 결혼식을 할 수 있을지 온갖 방법들이 난무했다.


드레스를 입어보는데도 돈을 내야 했고, 그 돈은 무조건 현금이어야 하며, 결혼식 때나 웨딩 화보를 촬영하기 위해 오시는 이모님에게도 현금을 지불해야 했다. 점심시간에 결혼식을 올리려면 친구들은 새벽 5시부터 메이크업샵에 앉아있어야 했다. 거기에다 새벽 출근 비용까지 청구되는 건 덤이었다.


나는 으레 청첩장이 오면, 누군가가 결혼을 전한다면 마음 가득 축하를 건넸다. 인생의 중대한 기로 중 하나를 결정했고,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그런 중대지사를 나에게 공유해 줘서 그것 또한 감사했다. 아무리 소원한 사이였더라도, 내 생각을 해주고 연락을 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한테 연락 올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축하를 바라며 연락했기에, 마음껏 축하를 건넸다.

모두들 삶을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했구나. 그리고 살아볼 만한 삶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했구나. 다들 아주 기뻐 보인다. 대단하다. 생각만 했다. 그런데 이런 선택과 품평회의 연속일 줄이야.


괜히 웨딩홀 견적을 내보기도 하고, 신상 드레스를 인터넷으로 열심히 구경해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수금쇼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 결혼식은 고사하고 성인이 되고 나선 계속 혼자서 지내왔는데,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결혼을 한다고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나는 결혼을 해서 독립된 가정을 꾸릴 만큼 안정되고 평온한 사람인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었다. 늦은 나이에 들어간 대학원에서는 연일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뭐라고 하셨다. 결과가 나와도 마음에 안 들어하실게 뻔하니, 공부도 하기 싫고, 실험도 하기 싫었다. 일도 꽃꽂이도 뜨개질도 시작한 지 4년이 넘어가니 재밌지가 않았다. 기계적으로 계속해서 하긴 하지만, 너무 잔잔하게 내 일상에 스며들어 버렸다.


이번에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미루기로 하면서, 한 주 정도 죽어버릴까 생각을 했다. 아파트 스프링클러에 빨간 비닐 노끈을 다는 상상을 했다. 그 갈등과 고난을 견뎌내고 싶다기 보단, 그냥 뭔가 더 겪고 싶지 않았다. 잠을 새벽 네다섯 시까지 자지 못했고, 힘들게 잠이 들면 더 이상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남자친구에게 평일에 내려와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같이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했다.


나의 연인은 군말 없이 퇴근 후에 시외버스를 타고 나에게로 왔다. 자세한 전후사정을 알려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소리 없이 우는 나를 꼭 안아줬다. 부은 눈으로 아침에 일어나 다시 회사에 가야 하는 남자친구를 터미널에 바래다주었다. 대합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단한 결과와 성과가 없어서 무섭다. 할게 많은데도 하기가 싫다. 그냥 침대에 누워 있고만 싶다. 자꾸 죽고 싶어서 무서워서 와달라고 했다. 바쁠 텐데 와줘서 미안하고 참 좋았다. 남자친구는 그런 거였느냐고 안아주고 괜찮다고 했다. 놀랍게도 남자친구가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니 정말 괜찮아졌다.


나는 이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다. 같이 있으면, 살아봐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사람이라면, 나중에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나서라도 따뜻한 손을 잡고, 조금 벗겨져도 예쁜 이마를 만지고 싶었다.


이번 주말엔 이직을 결정한 남자친구가 이야기했다.


-큰 기차역 근처로 회사를 옮겨서 주말부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말에는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완벽히 준비하는 건 힘들겠지만, 같이 지내면서 힘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 결혼식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면 좋을 거 같다.


-왜? 한창 웨딩 스튜디오랑 웨딩홀 찾아보고 그랬었지 않아?


-양가 부모님 네 분 다 일도 안 하시는데 올 사람도 없고, 계산하다 보니 이게 이렇게 돈이랑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인가 싶더라. 말이 결혼식이지 나는 그냥 품평회고 경조사비 걷으려는 행사 같다. 그걸 꼭 해야지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는 건 아니니까, 사실 중요한 건 결혼식이 아니라 둘이서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냐.


-맞지 눈먼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더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사람들 와서 나 쳐다보는 거 너무 창피해.


-그래? 그러면 사람이 적게 오는 스몰웨딩 같은 것도 있잖아.


-사람들이 적게 와서 친척들만 오면 그건 더 창피할 것 같은데, 너는 그거 견딜 수 있어?


-.... 아니.


-그리고 우리 둘 다 올 사람도 별로 없고.


-... 그건 그래


그날의 결론은 그렇게, 집안의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하겠지만, 결혼식은 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다. 는 결론이 와르르 웃음속에서 나왔다.


사실은 아직까지 우리의 서로의 입에서 결혼하자는 말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프러포즈라고 해야 하나, 요즘은 보통 결혼해 줄래? 가 아니라 나랑 결혼식을 준비해 줄래?로 시작해서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프로포즈를 하는 모양이다.


겁이 많은 나는 아직까지도 삶이 두려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삶에 큰 불만이 없는 남자친구는 다른 변화를 주기가 불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어느 날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결정을 하게 된다면, 기쁨이 따를 수 있도록 우리는 일단 각자, 그리고 함께 잘 지내는 것을 선두에 두기로 했다.


언젠가 살아가는 것이 괜찮아 지는 날이면, 나랑 결혼식 말고, 결혼을 해달라고 말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