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우리술의 바이럴 마케팅

우리술 신문 펼치기(옛 신문을 보며..)-1

과거 신문을 통해 우리술의 근현대 역사 기록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정확하지 않은 해석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대한매일신보 1910년 07월 09일 편편기담 / 출처-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화면 캡쳐

본문 기사


편편기담*


본사사원

한 사람이 술을 하여 팔고자 하나 의례적으로 소주나 약주나 막걸리 등을 하자니 남들도 다하여 신통치 아니하기에 고로 특별한 제조법으로 술을 하여 취쳥츈이라 이름을 하고 사가라 광고를 하였더니 한 사람도 사러 오는 자 없는지라 술은 많이 있으나 팔리지 아니하는 것이니 근심이 되어 밤새도록 생각을 하다가 그 이튿날 일어나서 각 요리집으로 자주 다니는 건달들 사오십 명을 청하여 술대접하고 청하기를리집마다 가서 술을 찾대 취쳥츈이라는 술이 없으면 아니 먹는다고만 하여 달라하였더니 며칠 후부터 각쳐 요리집에서 다투어가며 그 술을 사러 오는지라 불과 몇 날에 여러 독 되는 술을 다 팔고 큰 이문을 남겼더라.


최근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마케팅)이 우리술의 중요한 판매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는 구전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온라인에서 제품에 대한 평가를 통해 사람들에게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바이럴 마케팅이 영세한 양조장에게는 중요한 홍보 방법 중에 하나이다. 자본이 부족한 양조장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소비한 소비자의 블로그나 SNS를 통해 홍보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술과 관련된 바이럴 마케팅이 1910년 대한제국 시대에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은 방법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식당에 가서 특정 술을 찾고 그 술이 없으면 마시지 않는 방법 - 최근에도 OO양조업체 영업사원이 비슷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술을 홍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1910년에도 술을 판매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편편기담이 무언지 궁금하실 듯해서 논문 초록을 링크합니다.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41683728


『대한매일신보』의 <편편기담>과 '쓰는 독자'의 출현


초록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5월 23일 한글판을 내면서 다양한 방법의 〈글쓰기〉를 시도했다. 독자들이 직접 투고하는 〈기서〉 뿐만 아니라 〈편편기담〉이라는 독특한 난을 두고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해 왔다. 또한 한글판에서 국문소설을 꾸준히 실음으로써 근대 매체 내에서의 소설의 역할을 강화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도 독자투고와 이야기 사이에 끼여 있는 공간이 〈편편기담〉이라는 난이었다. 한글판 시작부터 등장했던 〈편편기담〉은 투고한 독자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도 않았고, 내용도 민담이나 전설, 옛날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1908년 2월 19일부터 『대한매일신보』는 필자 이름을 반드시 적으라며, 상품을 주겠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물론 같은 내용일 경우는 싣지 않겠다고 광고를 낸다. 이는 초창기 민담, 설화의 경우, 저작자가 분명치 않았지만, 점점 독자들이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하면서 저작자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편편기담〉은 근대 계몽기 근대 매체에서 독특하게 사용한 글쓰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모방과 창작 사이에서 “쓰는 독자”가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는 결국 독자들의 욕망이 확장되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텍스트를 채워가면서 읽으려는 적극적인 독서로서 “쓰는 독자”가 생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고, 스스로 글을 쓰고 싶은 욕망에서 작가로 나아가기 위한 습작의 장을 제공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글들은 독자들 서로서로가 공유하고, 또 거기에 자신들의 이야기로 채워 넣음으로써 〈편편기담〉 내에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쌓일 수 있었고, 새로운 독자들이 생성될 수 있었다. 〈편편기담〉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모방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구비문학의 문자적 정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편편기담〉의 내용들은 사실상 뒤로 갈수록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 많았다. 『장화홍련전』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자 〈편편기담〉의 내용 역시 계모의 학대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그만큼 유명한 글들을 모방하면서 자신들의 쓰기 욕망을 충족하고 있다. 이러한 〈편편기담〉의 내용은 독자들의 경향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1910년 8월 28일 폐간될 때까지 꾸준히 등장하고 있었으며, 독자들의 기호나 욕망을 읽기에는 가장 적합했을 것이다. 따라서 『매일신보』에서 이해조의 신소설이나 이후 일본 가정소설을 번안한 데에는 이러한 독자들에 대한 파악에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첩 얘기나, 계모 학대 등은 일본 가정소설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일신보』는 〈편편기담〉 등을 통해 독자들의 기호를 파악하여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일본 가정소설을 번안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결국 『매일신보』는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욕망 가운데 “읽기”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번안소설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작가적 욕망, 쓰기 자체에 대한 욕망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매일신보』는 〈현상문예〉까지 시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편편기담〉은 그러한 면에서 “쓰는 독자”의 출현을 가져온 중요한 기획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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