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신문 펼치기(옛 신문을 보며..)-2
과거 신문을 통해 우리술의 근현대 역사 기록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정확하지 않은 해석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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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의 양조주
조선서 빚는 술이 얼마
탁주 빚는 자가 삼십만
총독부에서 최근에 조사한 「주세표」를 보면 작년 십일월 현재의 양주 면허 인원수는 388,395명이나 되고 술 만드는 쌀 수는 1,421,500석이라 하며 이에 증수되는 세금은 40,073,566원 이라는대 이를 대정이년(1913년) 십일월 현재와 비교하면 인원에 18,216인 양조 쌀 수에 19,271석이 증가되었는데 이와 가치 현저히 증가되어 ◯은 해마다 술 먹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각부 각군의 조사가 대단히 치밀하게 된 까닭이라더라. 그런데 그 술의 종류와 면허 인원과 양조 쌀 수로 말하면 일본 청주는 8,307명의 면허인이 49,876석을 양조하고 약주는 6,613인의 면허인이 32,896석을 양조하는데 그중에서 양조 쌀 수라던지 면허인이라던지 제일 많은 것은 탁주라 319,620인이 1,228,464석을 양조한다 하고 또 지나 황주와 기타 잡주를 양조하는 자도 있으나 인원은 불과 7명이오 양조 쌀 수도 95석에 불과하더라. 그중에서 청주 면허를 갖은 사람은 일본인이지만은 기타의 종류는 다 조선 사람이고 또 주세액을 종류대로 구별하면 청주 11,670원 약주가 8,538원 탁주가 338,316원, 잡주 19원이라더라
주세법 발포는 1909년 2월이며, 그때의 주세의 부과방법은 영업자의 신고수량을 기초로 하였다. 하지만 주류 제조 수량의 통계가 처음으로 표명된 것은 1913년(대정 2년) 이후이며 그전까지는 정확한 수량을 파악할 수 없었다.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1)에 따른 주세법 시행 시대 주류제조수량표는 아래 표와 같다. 매일신보의 자료와 비슷하지만 조사 시기와 생산량으로 표현을 해서 약간의 차이는 있다.
주세(酒稅)는 우리나라의 세금 중 국세이며 간접세이다. 현재 전체 국세중 주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1.1%(30조)이며(2017년 기준) 이중 우리 술의 비율은 0.19%(5,000억 기준) 정도이다. 하지만 1934년에는 30.23%(19,590천원)에 이를 정도로 국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세금 인적도 있었다.
1913년 기준으로 전체 주류에서 차지하는 막걸리의 세금 비율은 94.3%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셨다는 것이고 또한 막걸리를 제조하는 사람만 31만 명이라고 하였다. 이때 인구를 16,992천 명으로 추정하면2) 인구의 1.8%가 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성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술을 만드는데 관여한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1913년 처음 주류 제조 수량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를 마셨고 그 술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막걸리는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전체 주류시장의 10%를 넘기기 힘든 주류가 되었다. 1988년을 기점으로 막걸리와 맥주 소비량의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지속적으로 감소를 해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913년의 막걸리의 소비량을 보면서 다시금 막걸리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1) 조선주조사 : 1907년부터 1935년까지 일제시대에 작성된 우리나라 주류업에 관한 일제의 공식 기록을 편역 한 책. 술의 종류와 제조법, 생산과 수급, 주류의 거래, 주조업의 개선에 대한 시설, 주조법의 변천 등을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했다.(네이버 책 소개)
2) 식민지 시기(1910년-1945년) 조선의 인구 동태와 구조, 박경술 저술,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