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58
전통주에는 ‘지역특산주’라는 제도가 있다. 지역특산주(농민주)는 1993년부터 농업인들의 주류 제조업 참여 확대를 통해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농민들이 스스로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도록 주류제조면허에 필요한 시설요건을 완화하여 쉽게 주류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생산한 술은 전통주에 포함시켜 온라인 판매 등의 특혜와 세금 감면의 혜택을 주었다.
19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역특산주 면허수는 ‘18년 973개로 ‘17년 대비 84개가 증가하였다. ’15년부터 매년 80개 정도의 면허가 증가하고 있다. 면허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업체수가 증가했다는 간접 증거로 볼 수 있다. 농업 관련 기관의 교육이 늘어나면서 함께 면허를 컨설팅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만드는 요건이 쉬워진 것이 그 이유로 볼 수 있다.
출고량과 출고금액은 ‘17년 5,956 kL, 29,722백만원에서 ’18년 6,906 kL, 33,574백만원으로 각각 950 kL, 3,852백만원 증가하였다. ‘18년 출고금액을 면허수로 나누어보면 1개 면허 당 출고금액은 33.5백만원이다.’17년에 비해 0.1백만원이 증가 한 것이다. 출고량과 출고금액이 소폭 증가하고 있지만 면허수 증가폭에 비하면 그 증가는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주류의 소비감소, 혼술과 홈술로 이야기되는 음주 문화의 변화 등 술을 마시는 빈도와 양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시기에 제품 차별성을 지닌 좋은 품질의 지역특산주가 많이 나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역특산주 중에 품질이 일정한 술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양조장의 제품 레시피가 수시로 변하는 걸 현장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품질의 비일관성은 소비자의 제품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특산주 양조장들의 제품 차별성이 크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생산하는 양조장은 늘고 있지만 비슷비슷하게 생산된 제품은 시장의 확대 보다는 한정된 시장을 나눠 먹는 결과만을 가져온다. 물론 양조장들은 많은 노력 끝에 제품을 출시한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양조장별 술맛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맛과 향이 유사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지역특산주라는 이름에 맞게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들을 소비자가 골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제품들이 고알코올이거나 유리병을 이용하다 보니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소비자의 저변 확대가 쉽지 않다. 국산 쌀을 사용하며 전통적인 제조 방법으로 만드는 곳이 많기에 대량 생산되는 시장 제품에 비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좋은 제품이 제대로 된 가격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제품이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은 소비자층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6-8도 정도의 저알코올에 차별화된 플라스틱 병을 사용하면 차별성이 생길 수 있다.
디자인과 유통, 마케팅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 내 술을 판매하고자 하는 타켓 층을 분석하고 그에 어울리는 병, 라벨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야 한다. 그러기에 술 제조비용 보다 마케팅 비용이 더 많이 투입 되야 한다 . 시작 단계 기준만 보면 설비에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최소 2-3년간 마케팅 투자비용에 대한 자금도 준비해야 한다. 지역특산주는 우려스러운 부분도 존재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 과거 우리술이 감미료를 넣어 만든 싸구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의 건배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동안 일반주류가 이루지 못한 부분이다.
지역특산주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술을 만들고 기존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준비된 양조장들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지역과 연계된 특색 있는 술들이 만들어 져야 한다. 어떻게 만들지와 함께 어떻게 팔지도 시작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제 지역특산주의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