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111
우리나라의 술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술과 건강에 대한 국제 현황 보고서'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5~2017년 연평균 1인당 알코올 섭취량은 10.2L다. 남성이 16.7L로 여성(3.9L)보다 4배 이상 많았다.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로 항상 상위에 랭크되어 있기에 사회적인 문제도 많았다. 지금은 덜 하지만 우리나라 음주문화 하면 폭탄주와 함께 술을 강요하는 문화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다음으로 폭음, 회차 문화도 빠질 수가 없으며 술잔 돌리기도 그 뒤를 따른다.
폭탄주 문화는 음주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매개체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취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시게 한다. 특히, 폭탄주는 '원샷'을 강요한다. 한번 잔을 들면 모두가 잔의 바닥까지 의무적으로 비워야 하고 따라서 컨디션에 맞추어 적당히 양을 조절해가며 마시지 못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혼술, 홈술 등의 음주문화 변화, 사회인식 변화와 자성의 목소리 등으로 그 분위기가 변하는 추세이다.
폭탄주의 역사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을까? 많은 방송이나 자료에서 문헌에 나와 있는 조선의 혼돈주(混沌酒, 막걸리에 증류식 소주를 섞은 것)가 폭탄주의 시초라 이야기 한다. 조선의 혼돈주는 막걸리와 소주를 섞어서 마셨던 방법이라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내용이다.
조선의 혼돈주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막걸리와 소주를 섞어 마시는 방식이 아니다. 혼돈주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양주방 및 주방문에는 폭탄주 제조법이 아닌 술을 빚는 제조 방법이 적혀있다. 주방문의 혼돈주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국전통지식포탈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백미 6되를 가루 내어, 2되 탕기로 8탕기를 끓여서 식거든 좋은 섬누룩 1되, 석임(술을 만들 때 쓰는 효모) 1되를 넣어 빚는다. 그리고 3일 만에 찹쌀 4되를 깨끗이 씻어 찌고 술밑을 걸러 섞어 넣어 3일이면 쓸 수 있다. 여름에 빚기 좋은 술이다.
그렇다면 혼돈주가 폭탄주와 같이 술을 섞어 마신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그 시초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1936년 이용기(李用基) 저자의 일제시대의 조리서이다.
당시의 한국 전통음식 총 800여 종 뿐만 아니라 서양, 일본, 중국 요리 만드는 법도 포함시켜서 작성한 책이다. 이 책에 혼돈주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이 책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혼합해서 마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의 제조법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혼돈주는 찹쌀로 빚은 막걸리에 소주에 타서 먹는 것이다. 좋은 소주 한 잔을 좋은 막걸리 반 사발에 따르되 가만히 한 옆으로 일 분 동안을 따르게 되면 소주가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위로 말갛게 떠오른다. 이 때 마시면 다 마시기까지 막걸리와 소주를 함께 마실 수 있게 된다. 막걸리는 차고 소주는 더워야 좋으며 소주로 홍소주를 넣으면 빛깔이 곱다. 맛은 매우 좋으나 아무리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라도 다섯 잔 이상은 더 마실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취하는 술이다.
폭탄주 제조법과 유사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혼돈주 내용이 사람들에게 인식되었고 조선시대에 발간된 주방문이나 양주방의 혼돈주와 동일한 명칭이다 보니 조선시대부터 혼돈주=폭탄주를 만들어 마셨다고 굳어진 듯하다. 물론 술을 섞어 마시는 방법이 조선시대라고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혼돈주가 폭탄주는 아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현대 폭탄주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20세기 초 가난한 미국의 부두 노동자들이 적은 돈으로 빨리 취하기 위해 싸구려 위스키와 맥주를 혼합해 마신 게 시초라고도 하고, 같은 시대 러시아의 벌목공들이 시베리아의 강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는 1983년 강원도의 군, 검찰, 안기부, 경찰 등의 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마셨고 이후 널리 퍼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무엇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싼값으로 빨리 술에 취하려던 문화였던 건 틀림없다.
폭탄주, 폭음 문화가 전통적인 한국의 음주 문화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과거에는 풍류로써 술을 가까이하고 계절마다 술을 담고 적당히 즐기는 음주 문화를 가졌다. 술을 마시는 것을 조심하기 위해 '향음주례(향촌의 선비나 유생들이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主賓)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는 잔치)를 통해 술 마시는 예를 갖췄다.
연말연시가 다가오고 있고 위드코로나로 인해 다시금 모임이 많아지고 있는 시기이다. 연말의 분위기에 너무 취해 몸을 상하면서까지 많은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술은 사람과의 관계를 편하게 만드는 도구로만 사용되면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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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89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