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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에서도 알아준 우리의 양조 포도주들

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148

 최근 와인 소비량이 다른 주종에 비해 빠르게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22년 와인 수입액이 전년 대비 3.8% 증가한 5억 8128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와인 소비의 증가를 알 수 있다. 수입 와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와인하면 수입 와인만을 알던 사람들이 국산 와인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산 양조용 포도 품종이 외국에 비해 부족하다. 한국의 와인 하면 식용포도인 캠벨얼리를 중심으로 한 조금은 단맛이 강조된 와인을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산머루나 머스켓베일리에이(MBA, 머루포도)를 이용하거나 브랜딩을 통해 단맛이 적은 와인도 생산을 하고 있다. 거기에 청수라는 청포도를 시작으로 식용으로 사용되는 샤인머스켓과 함께 다양한 외국산 청포도 품종을 이용한 화이트 와인들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그 청포도 품종이 외국의 품종(샤르도네, 쇼비뇽 블랑 등)만큼 다양하지 않다.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포도 품종들

 우리나라에서 청포도하면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때로는 푸르거나 덜 익은 포도를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청포도를 가까이에서 접한 것은 중고등학교 국어 수업시간일 것이다.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를 통해서이다.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의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희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중략)


 사실 이육사의 고향 경북은 안동이다. 안동에는 시에 나오는 ‘푸른 바다’가 없다. 그렇다면 ‘푸른 바다’는 어디를 지칭하는 것일까?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폐결핵을 앓았던 이육사가 1936년 요양을 하러 간 포항의 바닷가를 이야기한다고 추정을 한다. 특히, 시의 소재로 이야기되는 ‘청포도’ 역시 당시 포항 동해면 도구리에 존재했던 포도농장인 「미쯔와 포도농장」에서 재배하던 청포도를 보고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미쯔와 포도농장」에서는 정말 청포도를 키웠던 것일까? 당시 미쯔와 포도농장은 다양한 와인 제품을 만들었기에 제품 광고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미쯔와 포도농장 광고에서 레드와인과 함께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도 광고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포항의 호미곶과 포항 동해면 면사무소에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비도 있다. 

미쯔와 와인(레드와인, 화이트와인) 광고(1930년 12월 13일 조선신문) @ 국립중앙도서관


  미쯔와(삼륜, 三輪) 포도농장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포도 수입이 곤란하게 되자, 당시 조선총독부 데라우치(寺內) 총독이 동경의 마루미야상점(丸見屋商店)을 운영하는 사업가 미쯔와 젠베이(三輪善兵衛)에게 포도재배농장을 권하면서 시작되었다. 미쯔와는 수원의 권업모범장(농촌진흥청 전신)에 적절한 재배지를 의뢰하였고, 적은 강우량과 백토, 미네랄이 많은 경수 등의 이유로 포항지역이 최적지로 선정되었다. 1917년 10월 국유지를 불하받아 농장을 개간하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 1918년 2월에 미쯔와 농장을 설립하여 포도를 생산하고 점차 포도주 양조에도 착수하였다. 


 당시 미쯔와 포도농장은 연간 3.2만 명이 넘는 조선인을 고용하고 넓이가 200만㎡에 가까웠던, 동양에서 가장 큰 포도농장이었다. 1934년경 농장면적은 200정보(60만 평), 연산 생포도주 800석(1석=180ℓ), 브란디 100석, 감미포도주 500석이었다. 어떤 품종을 재배했는지 기록으로 나오지 않지만, 경북 포항에서 양조를 목적으로 60여 종의 외국 포도를 재배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유럽 종 포도일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제품은 식탁용 적생(赤生) 포도주, 식탁용 백생(白生) 포도주, 감미백포도주, 감미적포도주, 브란디 등이다. 이처럼 미쯔와 포도농장은 동양 제일의 포도원으로서 그 이름이 외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미쓰와 포트 와인’ 광고. 1921년 7월 25일 자 매일신보 @국립중앙도서관


  당시 오사카 아사히신문(1931. 6. 25.) 기사를 보면 미쯔와 포도농장 제품은 프랑스 고급품에 뒤지지 않았고, 향도 비교할 데가 없을 정도로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조선의 경북 지역에서 일본 최고의 국산품(당시 조선은 일본에 합병된 상태)이 나온다면서 “포도는 야마나시부터”라는 말이 옛날부터 전해오지만, 오늘날에는 ‘조선의 경북’으로 고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가와치(河内)의 야마토(大和) 포도도 유명하지만, 경북 포항에서는 양조를 목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포도나무로 조성한 대포도원으로 오늘날에는 반도의 모범적인 농장으로 유명하다고 전하고 있다.


  광복 후에도 이 농장에서는 ‘삼륜포도주공사’라는 이름으로 포도주를 계속 생산했으며 1952년에도 어느 신문에 포도주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농장의 포도주는 1960년대까지도 ‘포항 포도주’로 불리며 시중에 판매됐지만, 기술력의 한계를 드러냈고 1966년에 방부제 과다 사용이 문제가 돼 문을 닫았다. 현재 포도농장 자리에는 해병대교육훈련단과 포항비행장이 들어서 있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포도를 이용한 와인 양조가 안 되는 여러 이유 중에 양조 포도 품종의 재배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포항에서 심어진 포도 품종을 보면 당도도 20-24 브릭스가 나왔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서는 충분히 양조용 포도 품종들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일제강점기 때처럼 대규모의 포도 재배지역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최근 포도를 이용해 한국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들의 많은 노력을 통해 지역별로 다양한 국산 개발 품종이나 외국 포도 품종들을 심고 우리만의 재배법으로 포도를 수확하고 양조를 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이루지 못한 국산 포도 와인 제조법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시기이지만 프랑스 고급품에 뒤지지 않는 와인을 만들었던 역사가 있다. 그러기에 좀 더 시간은 걸일지 몰라도 국산 고급 와인의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그때까지 긴 호흡으로 한국 포도와인의 발전을 응원해 본다.   

우리술 품평회에서 입상한 한국의 포도들로 생산되는 포도와인들 @각 와이너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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