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가요록』에 담긴 전통주 제조법과 맛의 스펙트럼

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228

<본 글은 '한국술 고문헌 DB(한국술문헌연구소 제작)'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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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요록』에 담긴 전통주 제조법과 맛의 스펙트럼-술은 같아도 맛은 달랐다


앞선 글(『산가요록』 경험에서 과학으로, 조선의 양조를 기록하다, https://brunch.co.kr/@koreasool/337 ) 에서도 언급했듯이 『산가요록』은 우리나라에서 술을 기호식품, 즉 음료로서 제조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문헌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형태의 술 빚는 제조법이 폭넓게 수록되어 있다. 제조법이 이처럼 다채로운 이유는 결국 서로 다른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주 제조 교육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다. “술 만들기는 쉽지만, 좋은 술 만들기는 어렵다.” 전통주의 기본 재료는 쌀, 누룩, 물로 비교적 단순하므로 최소한의 교육만으로도 술을 빚는 과정 자체는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출발점에 불과하다.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쌀의 전처리 방식(고두밥, 범벅, 죽 등), 원료의 배합 비율, 발효 온도 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술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발효 과정에서의 온도 관리, 교반 여부와 같은 외부 요인까지 더해지면 품질 차이는 더 벌어진다. 전통주 제조가 단순한 재료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제조 조건을 통해 폭넓은 맛의 스펙트럼을 구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에, 제조 조건이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발효를 최적화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png 다양한 쌀 전처리 방법 @한국전통주연구소


술의 맛을 규정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곡물과 누룩, 제조 방식의 결합을 통해 폭넓은 향과 맛을 지닌다. 특히 발효를 담당하는 미생물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동일한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관리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가 만들어진다. 원료의 특성과 배합 비율, 물의 성질, 주종에 따른 여과나 증류 여부, 첨가물의 종류와 사용량 등 수많은 변수가 최종적인 풍미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단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하나의 감각적 경험을 형성한다. 과거에는 미생물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맛의 차이를 주로 원료 전처리 방식이나 부원료 사용을 통해 경험적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나아가 한약재, 과일, 꽃과 같은 다양한 첨가물을 더해 맛의 변화를 시도한 흔적 또한 확인할 수 있다.


2.jpg 다양한 술 제조방법의 수만큼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 @이대형

산가요록에 기록된 제조법을 살펴보면,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맛의 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멥쌀이나 찹쌀뿐 아니라 모미주(牟米酒)는 보리로, 목맥주(木麥酒)는 메밀로 빚은 술이다. 쌀을 사용하는 술 역시 전처리 방식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과동감백주(過冬甘白酒)는 구멍떡을 사용하고, 급시청주(急時清酒)는 죽으로 빚는다. 녹파주는 백설기를 활용하며, 유하주(流霞酒)는 범벅, 즉 반생반숙 상태의 곡물을 사용해 만든다. 일반적으로 죽으로 빚은 술은 도수가 높고 신맛이 강하며, 범벅으로 빚은 술은 도수가 낮고 단맛이 두드러진다고 알려져 있다. 구멍떡을 활용한 술은 도수가 낮고 향이 살아 있으며 단맛이 강하지만, 백설기를 사용한 술은 도수가 높고 담백하며 발효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고두밥은 가장 일반적인 전처리 방식으로, 향미 변주의 폭이 넓어 현재까지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쌀의 전처리 방식 하나만으로도 산가요록에는 다양한 풍미의 술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쌀과 물의 양, 누룩 비율을 달리 한 제조법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1).

3.jpg 밑술 형태에 따른 관능 특징 @탁약주개론

부재료 및 제조의 범위 또한 매우 넓다. 부의주(浮蟻酒)에는 잣을 곱게 찧어 넣고, 상실주(橡宲酒)에는 상수리나무 열매를 사용한다. 송화천로주(松花天露酒)에는 송화를, 연화주(蓮花酒)에는 연잎을 더한다. 이 밖에도 목맥소주(木麥燒酒)는 메밀과 보리를 사용한 소주이며, 육두주(六斗酒)는 쌀 여섯 말을 가루로 내어 볶은 뒤 죽으로 쑤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술들은 제조법을 현대 기술에 맞게 조정한다면 충분한 시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가운데 오늘날에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 만한 술로는 부의주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부의주는 술 위에 삭은 밥알이 동동 떠 있어 ‘개미가 물에 떠 있는 것 같다’라는 데서 이름이 붙은 맑은술의 일종이다. 화성 지역의 경기부의주는 경기도 무형유산 제2호로 지정된 바 있다(1987년 등록, 2011년 해제). 『목은집』을 비롯해 『산가요록』, 『고사촬요』, 『산림경제』, 『술 만드는 법』, 『양주방』, 『언서주찬방』, 『음식디미방』, 『임원십육지』, 『증보산림경제』, 『홍씨주방문』 등 총 26종의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과거 부의주가 대중 술로서 깊은 기반을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술 이름의 최초 언급은 『목은집』에서 확인되지만, 실제 제조법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문헌은 『산가요록』이 최초이다.


부의주의 제조 방법은 문헌마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의주는 끓인 물에 누룩을 풀어 만든 물누룩을 사용해 단양주로 빚는 방식으로, 별도의 부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이러한 방식 외에도 다양한 제조법이 존재한다. 특히 『산가요록』에는 고두밥과 누룩에 더해 잣[栢子]을 함께 짓찧어 넣어 발효시킨 뒤, 여기에 청주를 부어 숙성하는 독특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쌀 5되를 푹 찐 뒤 식으면 좋은 누룩가루 1되와 잣 1되 반을 함께 찧어 술을 빚는다. 6~7일이 지나 술이 익으면 좋은 청주 두 병을 붓고 다시 2~3일간 둔다. 충분히 익은 뒤 술동이에 나누어 담아 마시되,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4.jpg 산가요록 영인본

한편 『언서주찬방』과 후대의 『양주방』, 『정일당잡지(貞一堂雜識)』에서는 찹쌀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언서주찬방』에는 ‘또 한 방문’이라는 항목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는 백미를 여러 차례 씻어 쪄낸 뒤 식히고, 끓여 식힌 물에 누룩을 풀어 밥과 섞어 발효시키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사흘 후 술이 익으면 위에 뜬 건더기를 건져내고 맑은술을 띄우면 개미가 떠 있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부의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기록은 물누룩[水麯]을 사용하는 부의주의 전형적인 방식이자, 여름철에 빚는 주방문으로 처음 등장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후 『고사신서(攷事新書)』, 『김승지댁주방문(金承旨宅酒方文)』, 『술 만드는 법』, 『규곤요람(閨壼要覽)』, 『주찬(酒饌)』, 『치생요람(治生要覽)』, 『침주법(浸酒法)』, 『홍씨주방문』 등 13종의 문헌에서도 『언서주찬방』과 동일한 주방문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부의주의 원형은 『산가요록』과 『언서주찬방』의 ‘부의주 또 한 방문’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고사촬요』,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 『농정회요(農政會要)』, 『민천집설(民天集說)』,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해동농서(海東農書)』 등에서는 술을 체에 걸러 누룩 찌꺼기를 제거함으로써 색을 더욱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된 주방문이 나타난다.


또한 『음식디미방』, 『의방합편(醫方合編)』, 『민천집설』 등에서는 쌀과 물의 양이 변화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양주방』에 실린 ‘부의주 별방’은 백설기와 끓는 물을 합해 죽을 만들어 밑술을 빚고, 덧술에는 밀가루를 사용하며, 술독을 찬물에 담가 발효시키는 하월수중양법(夏月水中釀法)을 적용한 사례로, 기존과는 다른 이양주법(異釀酒法)으로 전개된 점이 주목된다. 이를 통해 부의주 역시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입맛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주됐음을 알 수 있다(2).


물론 과거의 제조법을 오늘날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누룩과 효모, 쌀 품종 등 근본적인 재료 자체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설령 유사하게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그 술이 현대인의 입맛을 온전히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변했지만 술 빚기의 핵심 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의 기술적 원리와 양조 개념은 오늘날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새로운 술을 만들기 위해 혁신을 추구하는 시도도 중요하지만, 고문헌에 기록된 전통 양조법을 직접 재현하고 여기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자신만의 술로 발전시키는 작업 역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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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주 백과사전 - 류인수

2.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부의주(浮蟻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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