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로 살펴본 고려시대 술의 정치·경제적 의미

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231

<본 글은 '한국술 고문헌 DB(한국술문헌연구소 제작)'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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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로 살펴본 고려시대 술의 정치·경제적 의미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우수한 기록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편찬되었으며, 고려·조선시대에는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를 바탕으로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였다. 600여 년에 걸친 조선 왕실의 역사를 담은 『조선왕조실록』 역시 사관들이 남긴 사초를 토대로 편찬된 기록물이다. 실록은 초초(初草), 중초(中草), 정초(正草)의 세 단계에 걸친 검수와 교정을 거쳐 완성되었으며, 이렇게 편찬된 실록과 시정기는 춘추관에서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등은 대표적인 국가기록물로 꼽힌다.


이 가운데 고려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는 고려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료이다. 『고려사(高麗史)』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 왕조의 역사서로, 고려의 정사(正史)에 해당한다. 1392년부터 1451년까지 60여 년에 걸쳐 집필과 수정이 반복되었다. 34명의 국왕이 통치한 474년간의 주요 사건과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담고 있다. 또한 후대의 지침이 될 정치적 근거로서, 조선을 건국한 주도 세력인 사대부들의 역사관이 반영된 기록물이다. 이 자료에는 술을 제조하는 방법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술과 관련된 몇 가지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통해 고려시대에 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또 왕실에서 술을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본 글에서는 『고려사』에 언급된 술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고려시대 술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1.jpg 고려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술 고문헌 DB」에 정리된 술 관련 내용은 총 38가지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술의 이름이 언급된 사례들이다. 계향어주(桂香御酒, 계피를 넣어 만든 술), 동락(湩酪, 말젖으로 만든 술), 미주(美酒, 좋은 술), 백자인주(栢子仁酒, 잣을 넣은 술), 백주 2회(白酒, 흰 술), 상존주(上尊酒, 으뜸가는 술), 선료(仙醪, 신선의 탁주), 소주(燒酒), 유하 2회(流霞, 신선이 마시는 술), 지주(旨酒, 맛이 좋은 술), 포도주 6회(蒲萄酒, 포도를 넣은 술), 행인자법주 2회(杏仁煮法酒, 살구씨를 넣은 술), 화주 4회(花酒, 꽃술) 등이 그것이며, 향국자(香麴子, 향기로운 누룩)도 한 차례 언급된다. 또한 술과 관련된 기물로는 수정배(水精杯, 수정으로 만든 술잔)와 앵무잔(鸚鵡盞, 앵무조개로 만든 잔)도 등장한다. 다만 이러한 명칭들은 당시의 다른 문헌에서도 확인되는 내용이므로, 여기에서는 별도로 깊이 다루지 않으려 한다.

2.jpg 고려사에 언급된 술들 @한국술 고문헌 DB

『고려사』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은 술과 관련된 고려시대 사회의 모습이다. 크게 보면 관청을 중심으로 한 직제, 즉 조직 구조의 모습과 사원 주조(寺院酒造, 사찰에서 술을 빚는 행위), 소주도(燒酒徒, 소주를 즐겨 마시던 무리), 주천현(酒泉縣, 술이 샘솟는 곳) 등 민간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관청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별주색(別酒色, 군인들에게 술을 공급하던 관서), 사온서(司醞署, 술을 담당한 궁중 관청), 주무(酒務, 주세를 관리하던 기관), 주점(酒店, 술을 파는 장소)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술과 관련된 용어가 고려사에 빈번하게 언급된다는 점만으로도 고려 사회에서 술이 차지했던 비중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별주색(別酒色, 군인들에게 술을 공급하던 관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별주색은 고려 말기인 1385년(우왕 11)에 군인들에게 술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으로 설명된다. 이는 1388년(우왕 14) 요동(遼東) 정벌을 위해 동원된 정벌군의 말을 준비하기 위해 설치된 별안색(別鞍色)과, 소를 조공하기 위해 설치된 점우색(點牛色)과 함께 유사한 시기에 설치된 관청이다. 별주색은 단순히 군인들에게 술을 공급하는 기능만을 수행한 관청으로 볼 수도 있으나, 보다 넓게는 별안색과 점우색과 기능적·목적적 연관성을 지닌 조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1388년에 단행된 요동 정벌에 동원된 정벌군을 지원하기 위해 별주색이 술을 공급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특히 전쟁 준비 과정에서 별도의 조직을 통해 술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당시 군사 운영과 의례, 사기 유지 측면에서 술이 차지했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3.jpg 별주색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다음으로 사온서(司醞署)를 살펴본다. 사온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궁중에서 술의 제조와 공급을 담당하던 관아이다. 궁중에서 직접 술을 제조하고 관리한 이유는 왕실의 각종 행사와 의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술 제조 자체는 비교적 보편화되어 있었으나, 품질이 뛰어난 술을 빚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과 관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국왕이 주관하는 제사나 연회 등 국가적 행사에 사용될 술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국가의 공식 의례와 사교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술이 중요한 식재료이자 왕실 권위와 직결되는 상징물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전담하여 관리하는 관청의 존재는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사온(司醞)의 ‘온(醞)’은 술을 빚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 관청의 명칭은 왕대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하였다. 즉, 양온서(良醞署), 장례서(掌醴署), 사온서(司醞署) 등으로 명칭이 바뀌어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 7월 관제를 새로 정하면서 사온서를 설치해 주례(酒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때 정원은 영(정5품)·주부(종6품)·직장(정7품)·봉사(종8품) 각 1인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러한 체제는 조선 초기부터 중종 대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고려도경』에도 양온(良醞)에 대한 언급이 있으므로, 해당 자료(https://brunch.co.kr/@koreasool/307)를 함께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4.jpg 서울 정부청사 후문 사온서터 @이대형


다음으로 주무(酒務)를 살펴본다. 주무에 대해 네이버 사전에서는 “고려시대에, 주세(酒稅)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벼슬, 또는 그 관원으로 좌주무(左酒務)와 우주무(右酒務)가 있었으며, 숙종 7년(1102)에 설치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5.jpg 주무에 대한 설명 @네이버 사전

하지만 당시 술에 세금을 부과했거나 주세를 징수했다는 명확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므로, 주무를 주세를 관리하던 기관으로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 숙종 7년(1102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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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서(制書)를 내리기를,

“민(民)을 부유하게 하고 국가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전화(錢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서북의 양조(兩朝)에서는 이를 행한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우리 동방은 홀로 아직 행하지 않고 있다. 이제 처음으로 화폐를 주조하는【鼓鑄】 법을 제정하니, 이에 따라 주조한 전(錢) 15,000관(貫)을 재추(宰樞)와 문무양반(文武兩班) 및 군인에게 나누어 하사하여 화폐사용의 시작점【權輿】으로 삼으며, 전문(錢文)은 해동통보(海東通寶)라고 할 것이다. 또 처음으로 전폐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태묘(太廟)에 고할 것이며, 이어서 경성(京城, 개경)에 좌우(左右) 주무(酒務)를 설치하고 또한 거리 양쪽에 존비(尊卑)에 상관없이 각각 점포를 설치하여 철전(鐵錢)을 사용하는 이로움을 일으키게 하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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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1097년 12월, 처음으로 주전관을 설치하고 금속 화폐의 유통을 선언하였다. 이후 1101년 4월에는 주전도감(鑄錢都監)에서 “철전(鐵錢)을 사용하는 이로움을 나라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라며 이를 종묘에 고하자는 상서를 올렸다. 같은 해 6월에는 칭량 화폐로 유통되던 은병에 표인을 찍어 유통하는 은병 유통책을 시행하였다. 이처럼 동전과 은병의 유통이 본격화되자, 숙종은 화폐 사용을 더욱 독려하기 위해 1102년(숙종 7) 12월 신료들에게 1만 5천 관의 동전을 하사하였고, 동시에 개경 좌우에 주무(酒務), 즉 술집을 설치하였다. 또한 서경에는 화천별감(貨泉別監)을 두어 화폐 사용과 무역을 장려하였으며, 1104년(숙종 9)에는 남경에 행차하여 주점(酒店)과 식점(食店)을 열고 관전(官錢)을 하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화폐 유통을 촉진하였다(2).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보면, 주무는 주세를 관리하기 위한 기관이라기보다는 화폐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관청 주도로 설치된 술집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6.jpg 철전(鐵鋌) @국립대구박물관


마지막으로 주점(酒店)을 살펴본다. 오늘날 주점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술을 판매하는 장소를 의미하지만, 고려시대의 주점은 그 성격이 다소 달랐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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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3년 10월 17일

주점 6개소를 설치하다.

겨울 10월 기해(己亥) 주점(酒店) 6곳을 설치하고, 성례(成禮)・낙빈(樂賓)・연령(延齡)・영액(靈液)・옥장(玉漿)・희빈(喜賓)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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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jpg 주점이 언급된 고려사 부분 @국사편찬위원회


여기에서 언급되는 주점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설치한 시설이었다. 이는 개인이 운영하던 사설 주점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개설한 것이므로, 공설주점 혹은 관설주점(官設酒店)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주류는 예로부터 대중적인 기호품이었으며, 주류의 판매는 일반 상품 교환을 촉진하는 매개적 기능도 수행하였다. 이에 성종은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일종의 상술로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점 명칭을 사용하여, 상업 발달을 유도하는 조성기관적(助成機關的)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상업 진흥을 위한 국가의 계획적 정책은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며, 숙종 대에 이르러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특히 화폐 제도가 시행되었음에도 백성의 빈곤과 인식 부족으로 인해 원활하게 통용되지 않자, 1104년(숙종 9)에는 각 주·현에 쌀을 지급하여 주식점(酒食店)을 개설하고 백성들에게 매매를 허가함으로써 화폐 사용을 체득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는 당시 화폐 경제의 불균형을 고려하여 시행된 숙종의 특징적인 상업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시대에는 화폐 유통이 미발달한 상황에서 각 주·현의 교통 요충지나 상인과 상품의 집산지에 주점을 설치하고, 관에서 선정한 인물이 이를 운영하도록 함으로써 상업과 화폐 유통을 동시에 촉진하고 자본의 축적을 도모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고려사』를 통해 살펴본 고려시대의 국가 시스템 속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지원 수단으로서의 술(별주색), 궁중에 술을 공급하던 관청(사온서), 그리고 화폐 유통과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매개 공간(주무와 주점 등)으로서, 술은 다양한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이는 당시 술이 백성의 일상뿐만 아니라 궁중과 국가 운영 전반에 걸쳐 의식주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음 장에서는 『고려사』에 기록된 민간 영역에서 술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별주색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3059


(2)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821?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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