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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어 먹었나?

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13

  과거 포털사이트 전통주 카페에서 ‘입국(粒麴)’ 사용에 대한 관한 논쟁이 자주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으며 질문에 대한 답변도 있었고 반박도 있었지만 뚜렷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이러한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인터넷 카페뿐만 아니라 우리술에 대한 정책을 세울 때나 토론회 장에 가도 항상 나오는 이야기이다. 전통주는 무엇이고, 언제부터가 우리의 전통주로 보아야 하는가? (시간적인 개념에서 접근해야 하는가?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물론 이런 토론회에서도 결론이 나지는 않고 대부분 자신들이 가진 생각을 이야기들을 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입국을 만들고 있는 양조장


 입국을 모르는 분들이 있을듯해서 간단히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증자된 곡물에 당화 효소 생산 곰팡이를 배양한 것으로 일본식 명칭은 고오지(koji)로 약․탁주용 입국(粒麴)은 백국균(白麴菌)이라는 Asp. luchuensis(구명칭 Asp. kawachii) 등을 증자한 쌀, 밀가루 가루에 배양한 것으로 이것은 약․탁주 발효과정 중 전분의 당화, 향미 부여와 잡균의 오염방지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식품과학기술대사전, 2008. 4. 10., 광일문화사 참조)

입국은 쌀에 조제종국(곰팡이 포자)를 뿌려 곰팡이를 배양한 쌀이다. 입구(좌) 조제종국(우)


  입국에 있어 많은 분들이 문제시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입국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균이라는 것과 우리 전통주의 명맥을 끊기 위해 ‘입국’이라는 일본식 주조 과정을 강제로 사용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고문헌 자료를 찾아보면 위의 내용은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술 생산량 통계가 처음으로 보고된 때가 1913년이며 이때의 일본 주세행정은 세원 확보가 목적이었기에 탁약주의 제조법은 전통방식 원형을 유지했다. 이때 조선탁주(밀 누룩만 사용)의 생산량은 194,660kL(87.7%), 소주 15,253kL(6.6%), 조선약주는 4,780kL(2.2%)로 대다수의 술 소비가 막걸리였으며 1933년에도 조선탁주 1,554,619kL(72.5%), 소주 381,817kL(17.8%), 조선약주는 179,350kL(8.3%)로 막걸리의 점유율은 감소했지만 전체적인 주류 생산량은 증가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누룩을 이용한 탁주의 소비량이 증가했다(조선주조사 발췌)

  일반적으로 해방 직후(1945) 일시적으로 탁약주에 일본식 입국을 허용했으나 즉시 금지하였으며 1949년 주세법 개정에서도 탁주 원료는 곡류와 누룩으로 규정하고 입국은 소주와 청중에만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주세법에 의해 입국을 이용한 막걸리를 만들 수가 없었고 만들었다면 법을 어긴 것이다. 이후 1962년 주세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탁주 제조 시 누룩을 10% 이상 사용하게 하였으며 이때부터 탁주에 입국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후 1963년 누룩 사용량 규제를 폐지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입국 막걸리를 마시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법에서 허용을 하기  에 많은 양조장들이 몰래 사용하였기에 이 입국 제조법을 허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49년 주세법에서의 주류별 원료 사용에 입국은 없다 / 출처 – 국세청기술연구소백년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막걸리에 사용된 입국은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에 의해 강제로 사용되었다가 보다는 우리 스스로 여러 가지 주변 환경 및 원인에 의해서  것이라 볼 수 있다. 


  누룩에서 입국으로 교체 고된 이유에 대해서는 것은 주세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막걸리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일제에 의해서 우리의 누룩 문화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입국 방식의 제조법이 존재하고 있다가 누룩과 입국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대량 생산방식의 편의성과 소비자들의 기호도의 변화 등 다양한 문제에 의해 제조방식이 누룩에서 입국으로 교체가 된 게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입국 막걸리에 대한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현재 사용하는 일본에서 도입되었다 고하는 입국 균주에 대해서도 다음에 논의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1). 참고로 일본식 입국도 제민요술에 따르면 우리의 누룩 제조 방법 방중에 하나인 낱알누룩 방법인 산국(散麴)(2)과 유사하다. 결국 우리의 경우 낱알누룩 방식이 제조방법이나 누룩의 생육조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누룩 제조 방식에서 대표가 되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의 누룩 소개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세수 확보 차원에 따라 기업화된 양조장을 만들기 위해 주세법을 시행하고 이에 우리의 가양주 문화나 집에서 만드는 누룩이 없어지고 상품화된 누룩이 생겨난 것들처럼 전체적인 전통주의 억압 흐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공론화해보려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한 문제이다.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가 만들고 그리고 마시는 막걸리가 다른 외부에 압력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변화된 게 아닌 우리 스스로가 여러 이유로 변형시키고 발전시켜서 만들어온 막걸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막걸리를 배척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전통주의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역사가 정확해져야지만 다양한 정보가 많아지고 현재 술에 있어서 스토리텔링이나 술에 문화를 입히는 작업도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1) 막걸리를 만드는 백국균은 어디에서 왔을까?

https://brunch.co.kr/@seungbeomhong/2

(2)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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