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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고량주와 위스키를 만들어 마셨다.

우리술 자료 펼치기(옛 신문을 중심으로..)-22

   최근 많은 상품에 있어 대중성과 함께 다양성도 중요한 상품의 판매 요소이다. 특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다양성과 차별성은 그 자체로 구매 욕구를 가지게 한다. 세계적으로 크래프트 맥주의 발전도 획일화된 맥주의 맛에서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발전하였다.          


크래프트 맥주의 다양함은 맥주 시장에 활력소가 되었다. / 출처 - pixbay


   우리 술 역시 과거에 비해 그 다양성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 1,000원짜리만 있던 막걸리 시장은 이제 소규모, 지역특산주 등의 막걸리에 의해 가격과 종류가 다양해졌다. 약주나 한국와인, 증류식 소주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많아지면서 다양성은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술 주종 다양성을 보면 조선 후기다 더 다양하다. 지금은 생산하지 않던 고량주와 위스키를 조선 후기에 생산한 것이다.      


   

주세령 / 출처 - 국세청기술연구소 100년사

   

    1916년에 주세령에는 양조주, 증류주, 재제주로 나누어 다양한 조선의 술을 분류해 놓았다. 양조주는 지금의 탁주, 약주, 청주, 맥주, 과실주를 묶어 놓은 것이고 증류주는 소주, 일반증류주를 재제주는 위스키, 브랜디, 리큐르, 기타 주류 등을 묶어 놓은 것이다. 지금의 술 분류보다 단순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선주조사에 나와 있는 조선 내에서 제조되는 주요 주류는 주세령의 술보다는 많다.             


 청주, 조선약주, 조선탁주, 조선합주, 맥주, 포도주(적포도주, 백포도주), 황주, 소주(박취소자, 술덧을 빼낸 소주, 곡자 소주, 흑국 소주, 신식 소주), 브랜디 및 위스키, 고량주, 백주, 미림, 신청주, 과하주, 감홍로, 송순주, 이강주, 오미주, 행실주, 재제 포도주, 재제 위스키, 리큐르류, 냉용청주


조선주조사에 정리되어 있는 조선에서 제조되는 술들 / 출처 - 조선주조사     



  조선주조사의 술들은 지금의 주세분류와 다르기도 하고 일부 술은 약주 또는 일반 증류주에 속해서 생산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생산하고 있지 않은 술은 황주, 고량주, 브랜디, 위스키 정도이다.  고량주의 경우 중국과의 연결 및 간도 자체에 왕래가 어렵지 않았기에 고량주 중 일부는 중국에 수출되었을 것이다. 특히 중국과 맞닿은 서조선 지역에서는 고량주의 생산이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26년 11월 21일 동아일보의 시도 순회 탐방 기획 기사를 보면 평안북도 철산군의 상공업에 대한 이야기 중 천산장흥합상회와 차련관영성상회는 중국식 고량주 제조소로 상당한 이익을 본다고 되어 있다. 특히 주세만 76,200원을 초과해서 철산 지세(地稅)의 1.5배(한배반, 倍半)가 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시도 순회 탐방 기획 기사(1926.11.21.) /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1937년 6월8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서조선(평안남북도 황해도 일원)의 주세에서 청주 668,338원, 약주 86,015원, 소주 3,148,535원, 고량주 64,426원으로 전체 주세에서 큰 부분은 아니었지만 약주와 비슷할 정도였다.


  조선의 고량주 관심은 1900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는 고량주 개량이라는 기사와 함께 일본관동도독부(중국 관동주에 세운 통치 기관) 중앙시험장에서 고량주를 연구한 내용을 기사에 실었다.  또한 국내 고량주 소비도 활발했다. 관련된 기사와 함께 광고도 나왔다. 제5회 경상남도주류품평회에서 일등상 수상을 고량주가 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 1910년 6월 9일 고량주 개량(좌), 조선시보 1925년 10월 13일 고량주 광고(우) / 출처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갈무리


  이런 고량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생산이 되었으며 전국에 8개의 제조장이 있을 정도로 많았다. 특히 고량주를 대만에 수출할 정도로 주질도 우수하였다.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업체 간의 과다 경쟁으로 주질이 저하되면서 1997년에 2개소로 줄어들었다. 1990년대에 몇 개 제품이 원액을 들어와 생산이 된 적이 있지만 이때는 발효를 통해 생산을 한 것이 아니다(1).     


  위스키 역시 조선주조사에는 발효를 해서 제조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자세한 자료가 많지는 않다. 다만 매일신보 1938년 08월04일자를 보면 ‘위스키도 국산품으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부내 종로화양식조합에서 종로에 있는 빠, 카페 영업자 36명이 모여 양주를 국산품을 사용하기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협의 내용은 1. 양주는 되도록 국산품을 사용 2. 양주 판매 가격은 사온 값의 배액 이상을 받지 말 것 3. 잔의 분량은 조합에서 지정한 대로 하되 그 형상과 색깔은 마음대로 할 것 4. 국산양주값은 한잔에 최저 40전 최고 70전으로 하되 박래품(舶來品, 서양에서 배에 실려 들어온 신식(新式) 물품)인 경우에는 1원으로 할 것 5. 칵테일은 1원 50전을 최고로 할 것 (여기서 국산품이라는 것이 일본 위스키일 수도 있다)    


매일신보 1938년 08월04일자 / 출처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갈무리

  위스키도 1950년에 도라지, 백양, 쌍마위스키가 있었으나 이것은 주정에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 향을 섞은 ‘위스키 맛 소주’였다. 위스키 원액이 일부 사용된(20% 미만인 기타 제재주) 위스키가 처음 나온 것은 1971년이다. 주월 국군용으로 판매한 국납위스키 였다. 하지만 이 모든 술들은 원액을 수입한 것이지 우리가 직접 발효 후 증류한 술들은 아니다.      


  현재 황주, 고량주, 위스키를 국내에서 직접 발효 후 제조하고 있는 곳은 없다. 지금은 조선시대 말 인구보다 3.5배가 증가했으며 경제 규모는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술에 있어서 다양성이 줄어든 것은 아이러니하다. 물론 과거에 비해 수입이 어려웠던 위스키나 고량주 등은 더 많은 종류가 수입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직접 고량주와 위스키를 만든다고 해서 외국의 술들과 비교해서 더 좋은 품질의 술을 만든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술들이 국내에 들어와 판매되고 있다 / 출처 - pixbay

   하지만 우리 술의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에 만들어 마시던 술들이 현재 생산이 안 되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나라의 다양한 주종의 술들이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술들이 우리가 직접 만든다면 우리 술의 다양성 및 발효 기술이 발달할 것이다. 물론 외국처럼 고량주와 위스키를 대량생산 형태로는 힘들것이다. 하지만 소량 생산을 통한 차별화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조만간 우리 땅에서 발효를 통해 우리가 만든 고량주와 위스키를 기대해 본다.    



(1) 국세청기술연구소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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