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통주 이야기 옮겨오기-36
설 연휴는 끝났지만, 여운은 아직 남아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다. 신정 때문에 의미는 축소되었지만, 설날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자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평소와는 다른 밥상도 차린다. 설날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게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차례상을 정성스럽게 차리는 가정도 있다. 차례상에 따라 마시는 술도 달라진다. 설은 지났지만, 차례상에 올라갔던 술을 살펴봤다.
설음식의 가장 기본은 떡국이다. 떡국의 의미는 다양하다.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뜻에서 ‘첨세병’(添歲餠)으로도 불렸다. 떡의 흰색은 깨끗하고 정결한 마음가짐으로 1년을 준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어떤 이들은 떡국의 떡이 옛날 화폐인 엽전과 모양이 같아서 새해엔 재물이 풍족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도 말한다. 음식이 특별하니 마실 것도 특별해야 할 것이다.
마실 것으로는 도소주(屠蘇酒)라는 약주가 대표적이었다. 시대에 따라 차이는 나지만, 대체로 길경, 육계, 방풍, 산초, 백출 등의 약재 넣어 끓여 마셨다. 이 술을 마시면 괴질과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장수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소주를 차례상에 올리는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지금 차례상에 올리는 술들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맑은 술(약주·청주)을 사용했다. 과거에는 ‘정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청주(사케)를 차례주로 사용했다. 일본 제조 방법으로 만들어진 술이다. 정종(正宗·마사무네)은 일제강점기 때 제조했던 일본 청주의 브랜드명이다. 우리 차례상에 일본식 제조법으로 만든 술을 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차례주’라는 이름이 붙은 누룩을 이용해 만든 술의 사용 비율이 늘고 있다.
차례가 끝나면 상에 오른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음복(飮福)하는 것이다. 조상께 올린 음식을 먹으면 조상의 복덕을 물려받는다고 믿었다. 그동안 음복 술은 주로 저가 술이었다. 하지만 좋은 술을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차례가 끝난 다음 우리가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차례상에 올라가는 술이 정해진 건 아니다. 지방마다 다르다. 부산·경남 지방에서는 막걸리를 사용하기도 하고, 고창은 복분자주를 상에 올리기도 한다. 엄격하게 치러지는 종묘제례에서도 막걸리가 사용되었다. 종묘제례에서는 모두 세 차례 술을 올리는데, 첫 번째 올리는 ‘예제’는 단술(감주)이며, 두 번째 올리는 ‘앙제’는 술을 여과하지 않고 만든 막걸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맑은술을 올렸다.
전국에는 800여 개 지역 전통주(막걸리, 약주, 소주 등)가 생산되고 있다. 적어도 각 도에 100개 이상의 양조장들이 있다는 소리다. 지난 설에 상에 올린 술은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요즘 제사는 의미나 형식이 바뀌고 있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술을 차례상에 올리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우리 전통주는 여러 시도를 통해 더 다양하고 질 좋을 술로 발전하고 있다.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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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에서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