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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빛 고운 세상, 충청도양반길과 산막이옛길

[사진이 있는 길여행 에세이]

 괴산댐으로 인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하천에 잠겨 갈 수 없는 마을이라고 해서 '산막이마을'이 있다. 지금은 절벽아래 데크길이 놓여있어 산막이옛길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산속에 갖혀있는 마을이다보니 인적이 적고 푸른 물과 회갈색의 절벽이 대비를 이루고, S자로 흘러가는 달천으로 인해 한반도의 지형이 보여지는 독특한 자연풍경이 내재된 곳이다.


  예전에는 산막이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데크길을 따라 왕복으로 산막이마을을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충청도 양반길이 조성되면서 달천에 흔들다리가 만들어지면서 운교리를 거쳐 산막이마을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운교리에 접어들면 고불고불한 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속리산둘레길 이정표와 만나는 곳에서 달천을 따라 내려가면 제주 곶자왈 못지않는 숲이 우거진 오솔길로 접어든다.



  산막이마을로 가는 양반길은 이른봄에 찾아오다 보니 연한 연두빛 새싹이 고개를 들기 시작할때이다. 마음 편하게 만드는 색감과 이제서야 피어나는 산벚꽃과 조팝나무, 복사꽃이 곳곳에 피어있어 푸른 숲에 점점이 찍어놓은 듯한 풍경을 보여 준다.


   좁은 오솔길은 한줄로 서서 가야하기때문에 서로 이야기를하지 못한다. 대신 양반길에서 보여지는 풍경에 좀더 관심을 두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걷는다.



  잔잔히 흐르는 달천에 비쳐진 숲과 하늘아래 숲이 만나 데칼꼬마니처럼 서로 마주한다. 

  짙은 원색의 색감이 주는 불편함대신 연한 파스텔톤 색감이 주는 평안함과 부드러움이 마음마저 부드럽고 잔잔하게 만들어 놓는다.


  도시에 살면서 항상 긴장하고 위기상황이라는 말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처럼 평이하고 평안한 길을 마주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해방감을 맛본다. 그리고 작은 스트레스마저 탈탈 털어버릴 수 있을것만 같다.


  산막이옛길이 잘 빗어서 정돈된 절편이라면, 양반길은 모양새는 볼품없지만 향긋함과 자연스러움을 가지고있는 쑥범벅 같다.


 양반길의 부드러움은 걷는내내 감탄사를 연발할만큼 걷는 동안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만약, 4월 중순이 아닌 다른 시간, 다른 계절에 왔다면 이처럼 보드라운 색감을 가진 숲을 보지 못했을듯 싶다. 가을에 왔다면 울긋붉긋한 단풍색깔에 화려하고 들뜨는 마음으로 이곳을 보았을듯 싶다.


  지금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이 주는 부드러운 색감을 즐기고 있는 것이였다.


  산막이마을로 가려면 2개의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여기부터는 신선의 세상에서 인간의 세상으로 이어가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세속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출구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자가용이 수시로 다니는 포장길로 접어든다. 도로 옆에 핀 단풍나무와 벚꽃이 있기에 삭막함을 덜 느끼고 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먼지 날리는 산막이마을로 가는 이길은 꽤나 고통스러운 길이 될 것이다.


  아직도 산막이 마을은 봄이 머물러 있다. 벚꽃이 남아있고, 이름모를 붉은색 꽃이 가로수가 되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익숙한 데크길을 따라 사람들은 말이 없이 걷는다.


  아름다운 풍경때문이 아니라 늦어지는 시간때문이다. 양반길에서 보아왔던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길과 산막이옛길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같이 걷는 사람들 입에서 내뿜은 감탄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다음에 보여질 장면이 더 뛰어나지 않다면 우리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그만큰 진한 감동을 받은것도 있지만 눈높이가 높아져 어지간한 풍경이나 색감이 아니라면 감동하지 않는다.


   작고 소소한 감동은 더이상 발디딜 수 없는 것이다. 나또한 길을 걷다보면 소소한 풍경에 감동하던것이 둔해진 적이 있었다. 더 크고 화려한 것을 보아야 감동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작고 평범함 속에서 감동을 찾는다.


   화려한 풍경을 통한 감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색감이 짙은 관상용 튤립보다는 보드랍고 작은 금강초롱꽃이 훨씬더 아름답다는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소소한 감동은 질리지 않으니까... 


 충청도 양반길은 이러한 곳이다. 화려하기 보다 소소하고 좁은 오솔길에서 느끼는 감동이 연속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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