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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 - 열네번째

삼남대로의 시작, 동작진과 노량진_2



  잠수교를 건너면 다른 모습을 한 공간을 만남니다. 낮에보는 것보다 밤에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곳으로 빛이 모여 사람을 붙잡아 놓는 곳입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이 노래를 통해 어부들을 붙잡았다면 여기는 자연에서 볼 수 없는 빛깔이 사람들을 세워놓습니다. 여기에 음악이 더해진다면 더욱이 머무르고 싶어질 것입니다. 



한강위를 수놓은 인공섬 세빛섬


잠수교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역시 저녁에 바라볼 때입니다. 한강에 다리가 모두 밤이되면 조명이 켜지면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잠수교와 반포대교또한 나름에 화장을 하고 한강위에서 자태를 뽐내는데 주변 세빛섬에서 뻗어나오는 조명이 어우러져 더욱 멋지게 보입니다. 게다가 오후 7시 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무지개빛으로 뿜어내는 물줄기와 조명이 어우러진 분수쇼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을 멈추게 합니다. 저녁에 이곳을 산책한다면 꼭 멈추고 분수쇼를 보면 좋겠습니다. 잠수교 오른편에 작은 인공섬 3개가 오밀조밀 붙어 있어 걸어서도 3개 섬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세빛둥둥섬으로 불리우다 지금은 ‘세빛섬‘이라는 공식명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빛’이라는 의미는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처럼 3개의 섬이 조화를 이루어 한강에 아름답게 빛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영문으로는 sevit이라고 쓰여 있는데 라틴어로 vit는 utus(water)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위에 빛으로 사람들이 놀랄만한 공간‘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세빛섬이 조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시민들에게 공개된 공연장이자 쉼터이자 볼거리 넘치는 명소입니다. 하지만 처음 기획하여 건설될 당시에는 완전 공개형 공간이 아니였습니다. 처음기획은 한강르네상스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선정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진행하다가 경제적 타당성문제 즉, 공간운영의 방식에 있어 보류 되었다가 박원순시장이 취임하면서 일대의 전환을 맞이합니다. 세빛섬에 대한 타당성검토를 다시 시작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2013년에 일부만 개방하였다가 2014년에 세빛섬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전면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개방된 이곳은 갤러리, 식당, 커피숍, 컨벤션홀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일부 시민만 참여할 수 있는 폐쇄적인 형태였습니다. 외국계 브랜드의 모피쇼가 개최되면서 공공성 문제가 휘말렸고 이후 감사를 통해 불공정거래가 밝혀지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되었었습니다. 서울시와 사업자가 극적인 타결을 이루면서 세빛섬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한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공섬이 되었습니다. 빨리 걸어서 한강을 지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때로는 휴식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아픈 다리를 쉬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마음에 여유를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강을 걷는 것은 이러한 의도로 만들어진 길입니다. 빨리 가기보다 한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서울의 풍경을 맛보고 음미하며 눈에 담아가는 여정입니다.



없어진 섬새로 생긴 섬 서래섬


  한강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근대까지 존재했던 섬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육지화 되거나 파괴되어 자취를 감춰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한강의 상류쪽에서는 저자도라는 섬이 강남개발 당시 골재용 흙이 사용되면서 사라졌고, 잠실섬과 부리도는 내륙화되어 없어졌습니다. 한강 하류에서는 난지섬이 내륙화되어 쓰레기섬이 되었고, 밤섬도 한강개발과 함께 사라졌으나 다시 자연에 힘으로 복원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한강이 개발되면서 인공적으로 섬으로 된 곳도있습니다. 서래섬은 1980년대 한강개발하면서 만들어진 섬이며, 노들섬은 일제강점기때 한강대교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섬이며, 선유도는 한강의 물흐름을 원활하게 하기위해 인위적으로 남게된 섬이되었습니다. 규모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근래에 들어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중에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휴식을 취하기 좋은 섬은 역시 서래섬입니다. 세빛섬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가까운 거리에 있고 다리를 건너서 진입하기 쉬운 곳입니다. 한강변 산책길 보다는 한강의 야경을 좀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한강개발하기 전까지는 이곳은 한강변 모래사장이였는데 이 주변에 작은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서릿개(蟠浦)’라고 하였으나 음이 변하여 지금의 반포(盤浦)로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기서 올림픽대로 건너편 서초동 마을이 서래마을 인데, 여기에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은1985년 프랑스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로 변하였고, 프랑스 식당이나 문화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실망할 수 있는곳이 여기 서래마을입니다. 전혀 프랑스같지 않은 모습인데다가 프랑스식당도 별로 없습니다. 와인이 대중화 되기전에 와인바와 빵집이 많았었는데 지금도 몇 군데 남아 있기는합니다. 서래마을을 진짜 프랑스 어디 마을에 온듯한 분위기를 느끼기위해 오신거라면 후회할겁니다. 그냥 서울 중심가에 프랑스인이 많이 사는 동네정도로만 생각하고 방문하면 실망하지는 않을겁니다. 예전에는 프랑스인들이 많다보니 서래(西來) ‘서양에서 온‘ 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서래마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곳 반포는 여러 의미가 섞여져 있는 곳입니다.

  서래섬에서 한강변으로 다가서면 왼쪽에는 동작대교와 한강대교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가장 밝게 보이는 세빛섬과 그 뒤로 반포대교가 눈에 들어옵니다. 정면에 보이는 남산과 남산타워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는 나만 한강을 보려는 듯이 가로로 병풍처럼 서있는 아파트가 즐비합니다.



삼남대로의 시작 동재기 나루터 와 동작대교


  서래섬을 벗어나 한강길따라 가면 파란색의 다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위에는 파란색 전철라인인 4호선이 지나가는 동작대교가 눈에 들어옵니다. 동작대교 또한 교통의 중요 요충지였던 동작나루가 있었던 곳입니다. 동작나루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동작역 2번 출구 옆에 작은 ‘ 재기나루터’ 표시석을 통해 이곳이 동작나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작이라는 말은 ‘구리로 만든 공작’ 또는 ‘구리 빛의 참새’란 뜻인데 지근거리에 있는 현충원과 동작나루 주변 지형이 공작을 닮았다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라는 설과 이 일대가 검붉은 색을 가진 돌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동작나루 옆 동네 이름이 흑석동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중국 오나라 손권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이 금향로이고, 촉나라 조조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이 구리로 만든 공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 동작동 일대와 연계된 땅 이름으로 추정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발췌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오홍석)어떤 이유로든 동재기나루터 지명은 1800년대 한강주변을 그린 ‘도성도‘나 ‘자도성지삼강도‘ 등에도 동작으로 표시되어 있을 만큼 중요 나루터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동작진이 중요한 이유는 한강아래 삼남지방(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삼남이라고 함)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던 첫 번째 포구로써 왕래가 많았던 포구였습니다. 그리고 동작나루에서 이수나루를 거쳐 남태령으로 넘어가는 길이 조선의 10대로 중 하나인 삼남대로입니다. 삼남대로는 전라도를 거쳐 제주로 가는 길이자 정조가 시흥대로를 만들기 전까지 이길을 따라 화성에 있는 융릉에 참배하러 갔었던 길이기도 합니다. 동작나루는 중요성 때문에 노량진에 산하에서 관리를 하던 나루였으며 상시로 관선이 10여척이 주둔하고 있었던 곳입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보니 민간이 운영하던 나룻배 몇 척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영조때 관용 배 3척을 노량진에서 이관하여 배치하였는데 관선을 타고 운행하면 무료로 운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사선들이 이를 감추고 유료로 운행하여 문제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한강 주변에는 이처럼 지방으로 내려가는 주요 길목에 나루가 많았으며, 규모에 따라 여러 가지 명칭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나루는 강이나 바다에서 사람이나 물건을 옮기는 장소를 지칭하는 말로 한자로 표현할 때는 작은 포구는 나루 또는 도(渡), 이보다 큰 나루는 진(津)이라 하고, 조금 큰 것을 포(浦), 대규모의 바다 나루는 항(港)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은 세곡이나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받기위한 나루터 기능이 있었고, ’포‘는 상업적인 기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강 주변에서 ’포‘가 들어간 나루를 찾아보면 마포, 영등포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에 해당하는 곳은 동작진, 노량진, 양화진, 용산진, 광진, 송파진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작은 나루가 있었겠지만 교통 요충지였던 곳은 보다 큰 규모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양도성의 사대문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거쳐야 하는 나루와 대로가 얼추 정해져 있습니다. 숭례문을 출발하여 노량진을 거쳐가면 시흥로(수원별로 7대로)를 따라 화성시까지 이어지고, 동작진으로 건너면 과천로(해남8대로, 충청수영 9대로, 통영별로 10대로)를 거쳐 삼남대로 따라 해남과 통영으로 이어집니다. 광희문 또는 흥인지문을 통해 한강진 나루를 거쳐 용인로(동래4대로)로 가면 용인과 부산(동래)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동작진이 더욱 복잡하고 외부 과객과 사대부들이 주로 왕래하던 왕래하게 된 이유는 정조가 수시로 화성으로 능행차를 함에따라 불편을 최소화 하기위해 시흥대로를 만들면서 동작진을 이용하도록 한것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동작진에 도착하였더라도 바로 남태령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수교차로 주변 방배중앙로는 하천이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하고 있는데 도로아래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수교차로 일대에 이수나루터가 있어 또 한 번 배를 타고 건너야만 남태령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통의 요지 중 하나였던 동작나루는 1984년 동작대교와 지하철 4호선이 건설되면서 한강대교와 잠수교 사이에 위치하여 반포방향, 동작동, 흑석동 방향으로 교통을 분산시키고 과전방향으로 질러갈 수 있는 빠른 길목에 위치함으로써 옛 길목으로써의 기능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나루기능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한강 주변이 발전함에 따라 나루는 하나둘씩 없어지고 이름만 남게 됩니다.

                                                            경조오부도의 삼남길 방향                 



충효의 마을에 세워진 현충원묘역


  동작역 2번 출구에서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 현충원에 다다릅니다. 동작역에서 숭실대입구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동작역 4번 출구로 나와 동작충효길을 따라 까마득한 계단을 올라 현충원 뒤편 산길을 따라 걸어가는 방법도 있고, 현충원을 가로질러 상도동방향 후문출입문으로 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주로 현충원을 가로질러 가는 이유는 화장실 이용과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봄이되면 흐드러지는 벚꽃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가을에는 단풍가득한 숲길처럼 아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말과 TV에서만 접했던 현충원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가능하면 현충원을 가로질러 갑니다. 하지만 저녁 6시 이후에는 후문이 잠기기 때문에 그전에 통과하던가 6시 이후에는 외곽 둘레길을 이용해야 합니다.


  현충원국립묘지는 1955년에 설치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를 안치한 곳입니다. 초기에는 군인들만 안치하도록 하였으나 1965년 대통령령에 의해 격을 높이고 안장 대상자 범위도 국가에 유공한 민간인에까지 확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안을 둘러보시면 국군장병의 묘소도 있고, 애국지사의 묘역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도 여기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곳도 이제는 묘지 자리가 부족해져 대전광역시에도 추가 건립하여 국립대전현충원을 두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희호여사가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묘역도 이곳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묘지 옆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현충원 내에서도 여러 갈래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로 가더라도 호국지장사가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묘역이라고는 하지만 무섭고 음침하기보다 아늑하고 편안한 공원같은 느낌이 먼저 다가옵니다. 동작구는 충효의 고장이라 지칭하기에 이에 맞춰 둘레길 이름도 동작충효길이라 정해졌고 짧은 6개 코스가 연이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구간은 2코스로 현충원내부길과 외곽의 둘레길에 속하며 현충 외부 둘레길은 약 2.6km 됩니다.  



호국영령을 보호하는 호국지장사


묘역을 거쳐 짧게 가파른 시멘트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숨이 깔딱 넘어갈즈음에 호국지장사에 도착하여 약수 한 잔 마시면서 숨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는 호국지장사라는 사찰로써 원래 이름은 화장사(華藏寺)였습니다. 고려 공민왕때 창건한 사찰이며, 선조가 묘를 쓰면서 이절을 창빈의 제를 지내고 관리하는 원찰로 삼아 이름을 갈궁사(葛宮寺)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찰 뒤편에 가면 삼천 지장보살상이 펼쳐진 곳도 볼 수있습니다. 이곳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는데 조선시대 오성과 한음인 이덕형과 이항복이 젊었을 때 여기서 과거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둘이서 나란힌 화장실에 갔는데 변소의 신인 측신이 나타나 두 소년의 아랫도리를 잡으면서 대감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장차 대감이 될 두 사람을 측신이 알아보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옛날같은 변소가 없으니 측신을 만날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한강길 7코스는 호국지장사를 거쳐 서달산 초입에서 바로 내려가 숭실대입구역 까지입니다. 이후에는 숲길을 걸으며 휴식을 취하고 밋밋한 한강과 거리를 두고 푸른 숲을 즐겨보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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