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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 - 열여섯번째

정조 행차의 길목-노량진과 남태령 - 2

8코스 : 숭실대입구역 - 서달산 -달마사전망대 - 노량진공원 - 한강대교 - 마포종점- 마포역      



이곳에 배다리를 놓아라!


 중앙대 후문을 지나 고구동산을 거쳐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산수유나무이기에 이른 봄에 오면 노란색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장소입니다. 꽃으로 만들어진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강대교를 따라 건너가기 전에 횡단보도 대신 노들역 지하도를 따라 가는 것이 안전하기도 하지만 볼거리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역이 있는 윤건릉으로 행차하기 위해 이곳에서 배다리를 만들어 건넜습니다. 그당시의 모습은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능행도’ 기록물과 그림을 통해 남겨져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노들역 벽면에 타일로 제작하여 벽면에 설치하였습니다. 천천히 하나씩 살펴보면 여덟폭으로 그려진 그림이 이곳에서 순서대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양에서 출발하여 화성으로 가는 그림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은데 실제로는 능행차 및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마치고 한양으로 되돌아 오는 행차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 순서는, 

오른쪽에서부터 보면

1. 화성성묘전배도(華城聖廟展拜圖)는 정조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에 나가 참배하는 장면으로 화성행궁에 도착하여 가장 처음 치러진 행사이기도 합니다.

2.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는 혜경궁 홍씨 회갑을 맞이하여 특별하게 진행된 과거시험의 장면이며,

3.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 장면이며,

4. 낙남헌양로연도(洛南軒養老宴圖) 낙남헌에서 개최된 원로들의 잔치 장면이며,

5. 서장대야조도(西將臺夜操圖)는 서장대에서 개최한 야간 군사 훈련에 참석한 정조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6. 득중정어사도(得中亭御射圖)는 어사대가 있는 득중정에서 열린 불꽃놀이하는 장면을 담고 있으며,

7.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는 화성 행사를 마치고 창덕궁으로 귀가하는 중에 시흥행궁에 들어가는 장면을 담고 있으며,

8. 한강주교환어도(漢江舟橋還御圖) 한강에 도착한 행차일행이 노량진에 설치된 주교를 건너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정조는 화성행차를 하면서 예상보다 거대한 인력을 동원하는 행사로 진행했습니다. 행차에 동원된 인원은 6천여명이고 1,400여 필의 말이 동원되었으며 그 길이만도 약 1.5km 정도로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당시에 궁중에서 활동하던 화가 최득현을 포함하여 7명 이상이 참여하여 그림을 그렸고, 정조의 화성행차행사시마다 기록물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통해 기록 및 정리하였는데, 특히 혜경궁홍씨 회갑연을 겸하여 진행했던 1795년의 행차는 다른 행차시기에 비해 더욱 신경쓰고 도감을 통해 기록한 의궤만도 100여 부 정도 제작하여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이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림으로 그리고 남긴 것이 아니라 목판으로 제작하여 찍어내듯 작업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정조의 꾸준한 화성행차는 효성이 지극함을 보이기위함도 있었겠지만 백성들과 소통하기위해 선택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타일로 그려져 있는 노들역은 노량진의 옛 이름이기도 합니다.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노량진으로 바뀌었고, 원래 이름은 노들나루터였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배다리가 정조이전에도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노량진을 관통하게  설치하였던 시기는 정조때이며 다른 지역에 비해 한강 유역이 좁았던 것도 하나의 잇점이였습니다. 이제는 노들역 3번 출구로 나와 한강대교로 가는 길목에 한 군데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정조 행차에 있어 첫 번째로 쉬어가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용양봉저정     


  노들역에서 200여 미터 걸어와 오른편 노량진문화원이 보이는 건물 옆에 작고 오래된 한옥이 축대위에 있습니다. 대부분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채 지나가는 곳인데 역사적으로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한 ‘용양봉저정’이 위치한 곳입니다. 현재는 건물 한 채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주교사터를 비롯하여 정조와 가족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던 곳입니다. 정조가 재임기간 24년 중 묘소를 옮긴 후 13번 융릉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다 보니 단순히 배를 타고 넘어오는 것은 꽤나 힘들었을 겁니다. 게다가 수많은 배들을 항시 대기시킬수도 없으니 이를 보안하기위해 배다리를 고안하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능행차를 위해 별도의 도감을 설치하여 운영토록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왕이 행차를 하게되면 배에 나뉘어 타고 이동하던가, 3,4척의 배를 묶어 어가를 싣고 건너는 방법을 운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배를 길게 묶어 배다리를 만들어 사용한 방식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방법인데 정조에는 주교사(舟橋司)를 설치하여 필요에따라 배다리(주교)를 설치하도록 하였습니다. 초기에는 관선을 운영했으나 후기에는 일반인의 사선을 운영하고 그 댓가로 대동미를 운반하는 독점권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필요할 때 무리없이 배를 운용하여 다리를 설치하고 한강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용양봉저정은 측면 2칸, 정면 6칸으로 된 건물이며 툇마루가 둘러쳐져 있어 쉬어가기 적당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정조가 능행차 갈 때도 쉬어가던 장소이자 점심식사를 하던 장소였습니다. 건물 아래에 안내해설 및 관리를 맡고 계시는 분이 상주하고 있어 원한다면 언제든지 용양봉저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툇마루에 앉아 정면을 보면 한강대교가 보이며, 건물 주변에는 건물 잔해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습니다. 게다가 이곳을 공원화 하기위해 주변에 낡은 건물들을 허물고 넓게 터를 잡고 다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곳은 공원으로써 새롭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조가 행차할때는 한양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하여 숭례문을 지나 노량진을 거쳐 화성행궁으로 가는 약 100여리에 행차길이며 그 사이에 용양봉저정과 안양, 시흥의 행궁에서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에 화성행궁에 다다르게 됩니다. 용양봉저정은 이러한 일정 중에 첫 번째 쉼터이기도 합니다. 이후 시흥로를 따라 시흥행궁에서 하루를 더 쉬어 갑니다. 정조 행차 초기에는 남태령을 넘는 삼남대로를 이용했었다고 하는데 행차 준비인원이 많다보니 산을 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여 시흥을 거쳐가는 우회로를 개설하였고 확장공사를 통해 원활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므로써 조선의 10대로 중 하나인 시흥대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강에 있었던 인공섬중지도(노들섬)     


 용양봉저정 툇마루 걸쳐 보이는 한강대교를 건너 마포까지는 한강수변을 따라 갑니다. 한강대교는 똑같은 모양의 대교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쌍둥이다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교를 건너면서 교각과 철근구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뭇 다름을 알게됩니다.


 한강대교의 옛 이름은 한강인도교이며 191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한강에 세워진 첫 번째 다리인데 왜 이 자리에 만들어졌을까요? 이곳 노량진은 교통의 요지이자 중요한 곳입니다. 경의선과 경부선이 만나 경성역(지금에 서울역)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기차는 한강을 건널 수있었지만 사람과 자가용은 다닐 수 없었는데 이를 해결하기위해 다리가 필요했고 적합한 장소가 노량진이였습니다. 삼남대로의 시작지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한강의 폭이 좁았기에 다리 건설에 유리했을 겁니다. 옛 용산일대 사진을 보면 여기 노들섬 또는 중지도에서 용산쪽 까지는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강건너편쪽으로 한강물이 유유이 흐르고 있습니다.

 인도교는 1929년 대홍수로 소실된 용산과 노들섬을 잇는 소교를 다시 건설하여 재개통 합니다. 처음 다리는 인도교라는 이름대로 사람과 우마차 정도만 다닐 수 있는 다리였는데 1934년부터 3년간 공사를 통해 타이드아치(Tied Arch)형식의 다리로 1937년에 완공되었고 우리가 보고 있는 아치다리이기도합니다. 1981년에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똑같은 다리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고 한강개발과 더불어 한강 주변의 다리이름을 정리하면서 한강대교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쌍둥이다리라는 말도 들었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개의  다리 중 어느것이 옛날에 만든 것일까요?       


 이를 알려면, 아치 부분에 철근 구조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옛 아치 다리는 리벳팅 타이드아치 공법을 사용했고 새로운 아치다리는 용접연결을 도입하여 아치교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전 것은 아치접합부위에 엠보싱처럼 리벳이 잔뜩 붙어있으며, 80년대 만들어진 다리는 매끈함 마감새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상도동에서 용산방면으로 건널 때 오른쪽에 있는 다리가 구교이며, 왼쪽이 신교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한강대교 중 구교는 서울시 미래유산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뒤편이 신교이고 앞쪽의 아치교가 구교이다  - 리벳팅 흔적을 보면 구분이 쉽다.

뒤편이 신교이고 앞쪽의 아치교가 구교이다  - 리벳팅 흔적을 보면 구분이 쉽다.

  

  한강대교 중앙에는 중지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들섬이라 불리웠고, 납천정(納泉井里)이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던 동네라고 하는데 한강대교가 가설되면서 이곳에 제방을 쌓고 다리 중간을 받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공섬입니다. 옛 마을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우물의 흔적도 없습니다. 지금은 중지도내에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에 따라 2020년 8월 28일에 개장하였습니다. 현재는 시범운영중이며 민간에게 공간대여와 쉼터이자 놀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졌습니다. 버스로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교통체증이 빈번한 곳이다보니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노들섬을 벗어나 아치가 없는 다리를 건너 한강수변 공원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한강을 건너려면 돈을 내시오원효대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강의 첫 번째 다리라고 하면 한강철교를 얘기합니다. 한강철교가 한강에 세워진 첫 번째 다리는 맞지만 오로지 기차만을 위한 다리입니다. 한강대교는 사람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첫 번째 다리라는 의미가 있기에 구분하여 생각하면 좋을 듯 합니다. 한강철교의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초에 한강철교는 한 개만 만들어졌을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4개의 교량이 놓여져 있는데 이중에 3개는 1930년대까지 건설되었습니다. 한강 북단에서 남단을 바라보면서 가장 오른쪽에 녹색으로 칠해진 다리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철교입니다. 최초에 만들어진 한강철교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있는 다리이며 다리의 교각을 보면 다른것과 달리 시멘트보다 큰돌을 쌓듯이 교각을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가장 오른쪽의 철교는 KTX가 다니는 철교이며 나머지는 지하철 1호선과 급행열차가 다니는 노선입니다. 그리고 여기 주변은 한강예술공원이라 칭하는데 주변에 다양한 조형물과 미술작품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를 찾아보며 걷는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자세한 것은 한강예술공원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http://hangangartpark.kr/main/)     

건설 초기의 한강철교 모습


   한강철교와 주변 설치미술들을 찾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여의도가 눈에 들어보며 V자형 교각으로 세워진 원효대교와 마주합니다. 한강을 주제로한 영화 중 ‘괴물‘이라는 영화를 보신적이 있나요? 오염된 한강의 물을 마시고 자란 괴물을 잡기위해 한 가족이 나서는 영화였죠. 그 영화속에 괴물이 살던 집이자 지나가던 길목이 원효대교와 원효대교에서 용산시내로 들어가는 하수구 구조물이 있는 곳이 여기입니다. 원효대교는 원래 민간자본으로 건설한 다리였는데 1984년 서울시에 기증함으로써 무료로 통행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민간자본으로 만들어진 터널이나 고속도로가 많아 당연히 유료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겠지만 원효대교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쉽지 않은 방식이였을 것입니다. 이렇듯 원효대교는 최초의 유료대교가 될 뻔 하였으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원효대교는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마포대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위해 만들어진 다리이며 여의도와 용산전자상가가 밀집한 원효동 일대를 연결한 다리이며 교각이 멋드러진 한강의 다리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원효대교를 지나면 마포대교 아래 마포 나루터가 있었던 곳에 다다릅니다. 마포는 상업이 발달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9코스 마포구간에서는 마포 일대 한강과 상업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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